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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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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머나먼 옛날 신석기시대에 11명의 남자가 사냥을 떠났다. 오른쪽 수풀에서 멧돼지가 불쑥 뛰어나와 사냥꾼 무리에 달려들었다. 모두 놀라 당황하는 사이 무리의 맨 왼쪽에 있던 사냥꾼 하나가 나서 오른쪽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은 명중했고 멧돼지는 고꾸라졌다. 그는 무리에서 유일한 왼손잡이였다.

축구팀이든 사냥꾼 무리든 왼손잡이가 하나쯤 있다면 훨씬 강해진다. 실제로 왼손잡이 비율은 동서고금을 떠나 전체 인구의 약 8~12%를 유지한다. 수렵시대의 이 같은 이점이 왼손잡이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유전자가 작용했다는 것이다(레너드 쉴레인, 『자연의 선택-지나 사이언스』).

일대일 싸움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왼손잡이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가설도 있다. 칼싸움이나 권투 같은 스포츠에서 오른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만 대비하고 있어 왼손잡이의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왼쪽을 뜻하는 ‘sinistral’에는 ‘기만적인’이란 의미가 들어있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문화적 편견 때문에 왼손잡이를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한 사회도 많았다. 손을 바꾸는 것도 아홉 살 이전에는 70% 정도의 성공률을 보이지만 아홉 살 이후에는 20%로 뚝 떨어진다.

왼손잡이에 관한 비밀은 현대과학으로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왼손잡이가 유전이 되긴 하지만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부모 모두 왼손잡이인 경우에도 자식이 왼손잡이인 비율이 많아야 50%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오른손잡이인 경우에도 자식의 2~10%는 왼손잡이다(마틴 바인만, 『손이 지배하는 세상』).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더 똑똑한지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다. 왼손의 움직임은 오른쪽 뇌가 좌우하고, 따라서 왼손잡이는 오른쪽 뇌가 담당하는 시공간적 기능이 발달됐다는 주장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처럼 건축가와 예술가 가운데 왼손잡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이 때문이란 설명이다. 반면 오른손잡이는 왼쪽 뇌가 발달돼 언어 영역이 뛰어나다고 한다.

올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공화당의 존 메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모두 왼손잡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16%가 왼손잡이로 알려지고 있다. 소수인 왼손잡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극복해온 것이 높은 성취도를 가지게 된 원인이라고들 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이나 전투기 조종같이 빠른 정보처리가 필요한 작업에는 왼손잡이가 낫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의 오른쪽과 왼쪽 사이의 연결이 빠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21세기에는 굳이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