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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총선용 선심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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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요즘 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붙는 꼬리표가 있다. '총선용 선심정책'이란 것이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예산을 앞당겨 집행한다거나, 특별소비세를 깎아준다거나, 서비스산업에 세제지원을 해준다거나, 신용불량자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다거나, 서민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대책을 내놓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시기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정책 가운데 정부가 뭔가 베푼다는 인상을 주는 정책들은 모조리 '총선용 선심정책'이란 딱지가 붙는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뭐가 총선용이고, 뭐가 선심정책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예산을 앞당겨 집행하는 것은 사실 총선과 관계없이 경기가 나쁠 때면 거의 예외없이 나오는 정책관행이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적인 경기대책의 하나다. 신용불량자 대책도 총선 때문에 나왔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신용불량자가 수백만명에 이르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 인식은 진작부터 있어 왔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도 예고된 것이었다. 정부는 제조업의 일자리가 빨리 늘지 않자 연초부터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에서 창업을 부추기는 쪽으로 일자리 대책을 준비해 왔다. 특별소비세 인하도 발표시기가 공교롭기는 해도 경기를 살려보자는 정부의 안간힘이 읽히는 대목이다. 서민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은 정부가 어느 때고 해야 할 일이다.

'총선용'이란 말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여당후보의 당선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을 의도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자면 정부가 내놓는 정책과 여당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연결지을 수 있는 인과성이 있어야 한다. 여당의 요청에 의해 정부가 여당후보 지역구의 민원사업을 갑작스레 들어준다거나, 장관이 일부러 여당 쪽에 유리한 대책을 만들어 냈다면 '총선용'이란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그러나 앞서 예를 든 정부 정책들이 여당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급조됐다고 단정짓기는 무리다. 또 이런 정책들이 여당후보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 보인다.

'선심정책'이란 말은 더 모호하다. 대략 정부가 특정계층이나 집단에 과도하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란 뜻이겠는데 어디까지가 선심성이고, 어떤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상적인 기능인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총선기간이라고 해서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 정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정책들을 모두 선심정책이라고 몰아붙이면 앞으로 정부는 선거에 즈음해서는 거의 손을 놔야 할 판이다. 만일 선거를 앞둔 시기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정말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어려운 이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선심정책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선거용 선심정책으로 지목된 정부의 각종 대책들이 정작 의도한 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경기의 불씨를 지펴보려는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감 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특소세를 내렸어도 소비가 당장 살아날 기미는 별로 안 보인다. 기업들은 아직 투자를 늘리겠다는 확신이 없고, 청년실업자들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조짐도 없다. 국제유가의 오름세는 계속되고, 국내물가는 불안하다.

만일 최근의 정부정책들이 총선용 선심정책이었다면 애석하게도 그 약발이 별로 안 먹히고 있는 셈이다. 이제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경제주체들은 그동안 "총선 때까지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기다려 왔다. 정부의 대책들이 총선 이후에는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