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도 하나밖에 없었는데 … 부시 별장이 바꾼 크로퍼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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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8일(현지시간) 저녁 텍사스주 크로퍼드의 축구장. 담요와 접이 의자를 든 주민 300여 명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별히 설치된 스크린으로 영화를 관람하며 시종일관 웃음꽃을 피웠다. 영화 속 주인공이 바로 자신과 이웃들이었기 때문이다.

AP 통신은 9일 “데이비드 모딜리아니가 제작한 ‘크로퍼드’가 이날 상영된 영화”라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텍사스주 주지사 시절인 1999년 크로퍼드 목장을 사들여 개인 별장으로 삼은 뒤 이 작은 농촌 마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주민 수가 700여 명에 불과하고 신호등이 하나뿐인 이 마을엔 이후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섰고 관광객과 시위대, 기자들이 연중 들락거린다.

모딜리아니는 2004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이 영화를 찍었다. 여기다 부시가 2000년 마을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 등을 담은 주민들의 비디오 화면을 삽입해 8년간의 역사를 재연해냈다. 이 중엔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이 2005년 크로퍼드 목장 앞에서 4주간 반전 시위를 펼치는 바람에 1만 명의 외지인이 들끓자, 견디다 못한 한 주민이 ‘신디, 집에 가라’는 문구를 쓴 말을 타고 반대 시위를 벌이는 장면도 포함됐다.

영화 속에서 주민들은 부시에 대한 찬반 의견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인근 대학의 관리이사인 워런 존슨은 “크로퍼드의 모든 주민이 부시를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놀랄 생각을 하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크로퍼드 목장 때문에 마을이 이득을 봤다는 점엔 주민 간에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어린 학생들이 대통령과 각료들, 정상회담을 하러 온 전 세계 지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부시와 함께 마을 중·고생들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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