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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프리즘] 중국 대지진 한 달 … 푹 꺼진 땅, 쑥 커진 애국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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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대지진이 11일로 한 달째를 맞았다. 사진은 7일 쓰촨성 스팡에서 유치원 교사가 어린이들을 인솔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고 있는 모습이다. [스팡 AFP=연합뉴스]

‘이팡유난 바팡즈위안(一方有難, 八方支援:한 곳의 어려움을 모두 나서서 지원한다)’.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 발생 이후 중국 적십자사가 구호작업을 위해 내건 기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피해 현장을 누비며 이 여덟 자를 외쳤다. 지진 피해 지역을 함께 돕자는 얘기다. 지진 발생 한 달째인 11일, 이 구호는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서로 돕는 시민의식이 키워지면서 사상 최악이라는 이번 지진으로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얻은 것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엄청난 피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인명 피해만 9일 현재 사망자 6만9142명, 실종자 1만7551명이다. 합치면 8만6693명이다. 피해 지역은 한국 면적보다 넓은 10만㎢에 이르고, 직·간접 피해자는 한국 인구에 가까운 4500여 만 명에 달할 정도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주택·일반건물·도로 등 파손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5000억 위안(약 74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 규모다. 그러나 이것은 복구 비용을 근거로 집계한 것일 뿐 산업계 피해는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로 지진 피해 지역에 밀집돼 있는 전투기 생산지 등 중국 핵심 군수산업 피해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천추파(陳求發) 부주임은 지난달 말 “670억 위안(약 10조원) 정도의 군수산업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지만 1차 조사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다 발전소 피해와 전국적인 전력 부족, 실업, 부상자 치료와 고아 문제, 이재민 지역 청소년 교육 문제 등도 심각하다.

귀중한 문화재도 크게 파손됐다. 쓰촨성 내 64개 지역 문화재 보호구역에서 문화재 419개가 심하게 훼손됐다.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두장옌(都江堰) 제방,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지는 이백(李白)의 조각상,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초당까지 포함돼 있다. 쓰촨성 문물국 자오촨룽(趙川榮) 부국장은 “문화재 손실이 너무 커 돈으로 환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얻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지진은 전 세계 중국인이 하나로 단합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9일 현재 중국 국내외에서 441억 위안(약 6조5000억원)의 구호금이 걷혔는데, 참여한 중국인 숫자는 1억 명을 넘는다. 특히 재난 구호 현장에는 자원봉사자 3000여 명이 처음 등장했다. 이는 향후 중국인의 선진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의 신속한 피해 현장 공개와 전 국가적인 지진 구호 노력은 향후 중국의 재난 구호 능력을 몇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 스스로도 이번 지진을 통해 중국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외교에서도 지진의 덕을 봤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이 지진 구호작업을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한층 돈독해졌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진 피해 현장 방문은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다지는 시발점이 됐다. 특히 대만 주민들이 이재민 돕기에 앞장서면서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들어선 양안 관계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었다.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15일자)는 “지진으로 중국과 한국·일본·러시아·대만 관계가 화해와 협력으로 한 단계 격상됐으며 ‘동북아 안정’이라는 신 국제외교 질서를 정착시켰다”고 분석했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불참 움직임도 이번 지진 사태를 계기로 급속하게 사그라졌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홍콩의 정치평론가인 탕팡팡(唐方方)은 “지진을 계기로 형성될 선진 시민의식이 향후 중국 민주화 요구로 확산되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한 중화 민족주의가 지진을 계기로 더 강화돼 향후 국수적 중화 민족주의 출현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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