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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영화] 송환(2004) VS 선택(200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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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면

30대에 86학번, 숫자로만 보면 말 그대로의 386세대인 이영미(37)씨는 전형적인 386세대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의 주입식 교육과는 또 다른 형태로 강요되는 역사공부가 끌리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그들과 더불어 두 팔을 자신있게 내뻗기에는 확신이 부족했다.

그저 신념에 찬 눈빛으로 자신과 같은 주변인들을 경원하는 친구들에게 주눅들어 살아온 그는 역사에 대해 부채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방관자일지언정 딱히 죄는 없다는 심정이었다.

이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을 보기로 마음먹은 건 몇 년 전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방관자로서의 내가 역사에 해가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사 속에서 30~40년간 자신의 일생을 볕들지 않는 곳에 묻어둔 이들이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 그런 역사를 가능케 하는데 자신의 무관심이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영화 한편을 봄으로써 그런 죄의식이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도대체 그 사람들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만이라도 풀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었던 나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생활의 유혹을 느끼던 1992년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을 만났다. '간첩'이라 불리는 그들을 만난다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내레이션은 '이들을 영웅화하기만 하면 어떡하나'했던 마음의 빗장을 푸는데 도움을 주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아니라 반공이데올로기로 철저히 교육받은 나와 같은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그들이 야유회에서 '김일성 찬가'를 부를 때 두려워했고 '납북자'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가족들과 마찰을 벌이는 고지식함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런데 영화에 푹 빠져든 이씨는 '이건 드라마가 아니야 다큐멘터리라고'를 수없이 되새겨야 했다. 마치 전형적인 상업영화에서처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요양원에서 장기수 할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주던 할머니들이 "아이구 씨×, 내가 왜 눈물이 나냐" 같은 장면으로 관객을 휘어잡은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이씨의 눈물을 그치지 않게 했기 때문이었다.

전향서약서를 쓰고 먼저 밖에 나와있던 사람과 막 출소한 비전향수가 만나 몇 분 동안을 뒤엉켜 말없이 흐느낄 때, 45년간의 세계 최장기 복역으로 기록을 세우고 나온 김선명씨가 노모를 만나 "그러니 엄마 말을 들었어야지"라는 말에 생애 처음 "잘못했다"라는 말을 할 때, 그가 북한으로 귀향 전 돌아가신 노모의 산소를 찾으려 해도 가족들이 알려주지 않아 헛헛한 발걸음을 돌릴 때, 귀향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로 귀향을 포기하던 안학섭씨가 동료들에게 외면당할 때, 그 오랜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마음속의 짓무른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이씨는 어느 비극의 드라마 주인공 못지않게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상업영화식으로 말하자면 그 주인공들이 출소 후 결국 '북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주 갈등으로 등장한 영화의 막바지에서 여전히 이 '드라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씨는 이미 뉴스로까지 확인한 그들의 '귀향'으로 영화가 귀결될 것을 알면서도 혹 이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결국 이 할아버지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이씨는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헷갈렸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끝없이 남겨놓은 영화는 그저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의 첫 편인 듯했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극장에서 놓쳤던 홍기선 감독의 '선택'의 비디오를 본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송환'에서 그들의 증언만으로 상상했던 그들의 감옥 속 세월을 '선택'은 김선명이라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씨의 상상을 초월했던 가혹한 폭력과 고문과 배고픔, 전향에 대한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도 영화 속 주인공 김선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커다란 사상을 버릴 수 있어도 작은 양심은 버릴 수 없다"고. 그러면서 "이 땅에 공산주의가 가능하다고 믿느냐"라는 중앙정보부 직원에게 "내가 김구를 믿든 이완용을 믿든 그것이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당당히 항변하며 "내 선택은 무엇이 좋은 것이었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속에서 이씨는 "무엇이 저들을 오랜 세월동안을 버티도록 했을까"란 의문에 대해 작은 답을 얻은 듯했다.

그들의 선택은 정말로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적인 '이념'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무조건 옳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던 거센 손길에 대한 끝없는 저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국은 한 인간으로서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의지였을 것이다.

이씨는 무엇보다 '사람'을 통해서 '통일'이라는 역사문제를 한번쯤 고민하게 해준 두 영화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두 영화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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