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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개를 소재로 한 ..." 김병언 지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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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누구나 괴로움을 떠안고 산다.망나니 동료거나 빨갱이 아버지거나, 아니면 죽은 자식에 대한 기억이거나 부끄러운 과거의 행동이거나.그것은 굳은 흉터가 아니다.그것은 매일 가슴 속에서 자라난다.그것은 공포를,절망을,부끄러움을,원한을 하 염없이 키운다.그것은 온몸에 퍼지는 암세포와 같다.
괴로움은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동서(同棲)할 수밖에 없는 적이다.
김병언의 『개를 소재로 한 세가지 슬픈 사건』에 의하면 그 암종과 함께 사는 네가지 방식이 있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번의 부인과 한번의 수락이 있다.우리는 괴로움의 베드로다.
그 하나는 경찰의 방식이다.괴로움을 가두고 구박하고 타기하는것.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부재시키려 한다.그러나 그것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나 한가.그것은 결국 타인에게 괴로움을 떠맡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그럼으로써 그 스스로 타자의 괴로움의원천이 된다.
그 둘은 사업가의 방식이다.괴로움이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괴로움에게 항변의 기회를 주자.그것은 우리의 관용을 증거할 것이다. 이 괴로움을 과시하기로 하자.누구든 이렇게 괴로움을 온몸으로 떠안고 사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괴로움은 그렇게 나의 행복의 자원이 된다.
그 셋은 봉급생활자의 방식이다.그는 괴로움에 대해 큰소리치지도, 입다물게 하지도 못한다.경찰과 부장에게 떠밀려 그냥 그것을 껴안고 산다.괴로움은 그의 평생 속병이 된다.어느날 휴거가일어나 그 짐을 덜게 될 꿈을 구걸하면서.문득 괴로움이 온몸에퍼져 죽음에 이르게 될 악몽에 시달리면서.괴로움은 그를 환상과재앙으로 이끄는 통로다.아니다.아니다.괴로움을 그렇게 가둬서도팔아서도 앓아서도 안된다.그 잔인하고 퇴폐스럽고 굴욕적인 삶을살아서는 안된다.괴로움에 대 한 이 세번의 부인을 부인하기로 하자.그 마음이 있을 수 있다면 괴로움을 온몸으로 수락하는 길이 또하나 남는다.
스스로 괴로움의 내력 그 자체가 되는 것.원수를 죽이기 위해날마다 간 칼이 마침내 닳아 아무도 해칠 수 없게 되는 것.그렇게 괴로움과 함께 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그 사람들이 있는 한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미화되지도 않는다.그것은 평생의 생각거리가 된다.그 원인과 치유를 향해 열린 창문이 된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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