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돈은 숨은 그림속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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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盧泰愚)씨는 당초 검찰에 제출한 수사 참고자료에서 자신의 비자금 조성규모는 5,000억원 가량이고 쓰다 남은 돈은1,857억원이라고 밝혔다.그러나 한달여 뒤 검찰의 기소장에는조성액이 4,500억~4,600억원으로 줄고, 쓰다 남은 돈은부동산으로 흘러 들어 간 것까지 합쳐 2,391억원으로 늘었다.말과 조사결과가 틀리고,돈 액수의 아귀도 안맞는다.
차변(借邊)과 대변(貸邊)이 일치해야 하는 것은 돈 계산의 철칙.그런데 자백보다 줄어든 조성규모조차 사용액과 일치하지 않는다.800억원 내지 900억원이 빈다.왜 아귀가 맞지 않느냐고 모두들 궁금해 한다.아마 盧씨가 더 숨기고 있 거나 기억력이 쇠퇴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들한다.그가 계속 모른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 한국 검찰이 건국 이래 최대의 돈찾기 게임에서 난관에 봉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의 내로라하는 수색 전문가들이 盧씨의 기억을 소생시키거나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세상보기자(子)에게 조언해 오고 있다.먼저 미국의 고고학자 인디애 나 존스박사가 보낸 편지.
『그는 아마 신비의 오지(奧地)에 돈을 숨겼다가 그 장소를 잊어버렸을 겁니다.저는 잃어버린 성궤(聖櫃)도 찾았고 나라를 지키는 성석(聖石)도 찾았습니다.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聖杯)도 나의 예리한 눈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숨긴 돈을 찾으려면 먼저 신비의 장소를 알아야 합니다.법률 전문가는 필요없어요.상상력과 탐험심이 강한 사람들이 나서야 합니다.盧씨를 데리고아프리카 사막이나 히말라야 산록(山麓)으로 떠나야 합니다.』 프랑스의 전설적 귀족 몽테 크리스토 백작도 존스박사의 견해에 동조한다.
『한낱 선원에 불과했던 저 에드몽 단테스가 수백년 동안 숨겨져온 보물을 발견한 곳은 지중해 한가운데의 무인도였습니다.한국에도 무인도가 많죠.서해 굴업도 근처의 낙도(落島)를 뒤져 보는 것이 어떨까요.핵 폐기장 건설계획이 취소된 바 로 그 근처말이에요.』 그러나 영국의 탐정 셜록 홈스의 견해는 좀 다르다.그는 盧씨가 돈의 출입 명세를 기록한 문서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가지 사건에서 제가 귀중한 편지 또는 사진을 찾아낸 비결은 아주 평범한 곳을 뒤지라는 것입니다.상식의 허(虛)를 찌르는 곳에 그는 비밀 출납부를 숨겨 놓았을 겁니다.』 한국 검찰의 노력을 안타까워하고 거기에 도움을 주려는 고마운 충고들이 답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은닉.수색의 1인자인 숨은 그림찾기의 임종우 화백이 전화를 걸어 왔다.
『그 사람들 말 듣지 말라고 하세요.오히려 숨은 그림 속에서찾으라고 하세요.그림을 보세요.사냥을 끝낸 사냥꾼이 막 사냥개를 삶으려고 하고 있죠.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냥개와 모락모락 김을 내는 가마솥 사이에 뭐가 안 보여요.아 금 고가 있잖아요.그래도 안 보인다고요.그럼 딴데서 찾읍시다.사냥꾼 어깨 위에사나운 매가 앉아 있고 그 뒤로 이미 삶아진 토끼가 널부러져 있죠.그 사이에 장롱이 보입니까.그것도 안 보여요.아니 가르쳐줘도 못찾습니까.』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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