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 휘두르고 방패로 찍고 … 80년대로 돌아간 광화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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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충돌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버스에 불을 붙여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5시 세종로를 점거한 채 밤샘 시위를 벌인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뉴시스]

8일 새벽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충돌이 밤새도록 계속됐다. 버스를 끌어낸 시위대가 버스 뒤에 있던 전경을 향해 삽자루를 휘두르고 있다(사진1). 강제 해산 작업이 시작되자 경찰을 피해 도망가는 시민(사진2). 한 시위자가 전경버스 위로 올라가 경찰이 사용하는 진압봉으로 휘두르고 (사진3), 경찰이 진압봉을 휘두른 이 시위자를 방패로 제압하고 있다(사진4). [연합뉴스·뉴시스]

8일 오전 1시 서울 세종로 네거리.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 6000여 명(경찰 추산)이 경찰 버스를 사이에 두고 전·의경과 대치했다. 이들은 전날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72시간 릴레이 촛불 집회’에 참가한 뒤 가두 시위를 벌였다.

대열 앞쪽에 쇠파이프·각목·삽·망치를 든 참가자들이 나타났다. 쇠파이프 등은 인근 공사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으로 경찰 버스 유리창을 깼다. 버스에 오르기 위한 철제 사다리도 수십여 개가 등장했다. 살충제 스프레이에 불을 붙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밧줄을 매달아 끌어낸 경찰버스는 폐차된 것처럼 파손됐다.

전·의경은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뿌렸다. 일대가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몇몇 시위대들은 경찰 버스 지붕으로 올라가 쇠파이프나 경찰로부터 빼앗은 진압봉을 휘둘렀다. 경찰은 이들을 방패로 내려찍었다. 흥분한 시위대가 고립된 전·의경들을 삽 등으로 10여 차례 때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양측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깨진 유리창 파편에 전경 최모씨의 눈 밑이 찢어지는 등 경찰 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버스에 올라 전경과 싸우던 남성이 버스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국민대책회의 측은 시민 3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세종로를 점거한 채 밤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오전 5시 전경 1만여 명을 투입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사라졌던 쇠파이프 다시 등장=한 달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가 시위대와 경찰 간의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았다. 5월 2일 집회가 시작된 뒤 쇠파이프·각목이 등장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경찰 측은 “버스 19대가 파손되고 무전기를 뺏기는 등 장비 80점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11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주최 측인 국민대책회의를 공개 비판했다. 이송범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5일 밤 시작된 ‘72시간 집회’가 불법 폭력시위로 치달았다. 1970~80년대의 극렬 폭력시위를 방불케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연행자뿐 아니라 채증 자료를 통해 폭력 가담자를 찾아내 사법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대책회의 측은 “폭력 사태의 원인은 경찰”이라고 맞받았다. 안진걸 대책회의 실무팀장은 “몇몇 시민이 흥분, 과격한 양상으로 진행된 점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시민들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72시간 집회’의 마지막 날인 이날 오후 8시 5000여 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 뒤 태평로·종로·세종로를 돌며 가두 시위를 벌인 뒤 자진 해산했다. 대책회의 측은 이날 폭력 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평화집회 호소문’을 발표했다.

◇10일 보수단체와 충돌 우려=대책회의는 6월 항쟁 21주년 기념일인 10일에 맞춰 ‘100만 촛불 대행진’을 개최한다. 386세대 상당수도 자리를 함께한다.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 효순·미선양 6주기(13일),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일(15일) 등 행사도 잇따른다. 보수 성향 단체도 집회를 준비 중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선진화국민회의·국민행동본부 등은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5만 명이 참가하는 ‘법질서 수호 및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촉구 국민대회’를 연다. 국가정체성국민협의회도 13일 서울역 광장에서 6·15 선언 폐기 촉구 대회를 진행한다.

천인성·강기헌·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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