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과 棺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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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10면

박주선 통합민주당 의원은 수의(壽衣)와 수의(囚衣)를 모두 가져 봤다. 그는 12세 때 경찰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그가 죽을 줄로만 알고 관(棺)과 수의(壽衣)까지 맞췄으나 그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다섯 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그가 두 번째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건이었다. 박 의원은 ‘이 사고가 공권력과 맺을 악연의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세 번 구속됐다 세 번 모두 무죄로 풀려난 사나이.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전남 보성의 쓰러져 가는 토담집에서 태어난 그는 무척 가난했다. 행상을 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는 그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판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서울대 법대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 수석 합격을 하고 검사로서 승승장구하자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발탁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법무비서관 시절 ‘옷 로비 의혹 사건’에 휘말려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무죄로 풀려나 고향인 전남 보성-화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새 인생을 개척하는 듯했으나 또다시 나라종금 사건(2003년)과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2004년)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다. 두 사건에서 역시 무죄로 풀려난 그는 죄 없이 336일간 수감된 것에 대한 보상금으로 2399만원을 받았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포승줄에 묶이고 수의(囚衣)까지 입었던 그는 사법체계의 명암을 모두 겪어 본 사람이다. 그는 “검찰은 법질서 확립의 최후 보루지만 그 권력이 잘못 행사되면 인간을 파멸시키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구한 삶을 살아온 박 의원은 어느덧 운명론자가 돼 버렸다. ‘인생의 종착역’ 같았던 구치소를 세 번이나 들어갔는데도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됐다. 호형호제하며 서로 의지하는 박광태 광주시장을 만난 것도 구치소 안에서다. 대학 시절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을 몇 년 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에 골인한 일도 그는 ‘운명의 축복’으로 여긴다.

18대 총선에서 박근혜(88.57%) 의원을 제치고 전국 최다 득표율(88.73%)로 우뚝 선 그는 당 최고위원직을 마음에 두고 다음달 전당대회를 기다린다. 사법적으로 세 번 죽었다 살아난 그는 2004년 진짜 죽을 고비를 세 번째로 넘겼다. 두 번째 구속수감 중이던 당시 그는 옥중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직후 병원에서 관상동맥이 막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목숨을 건 심장수술을 받아야 했다. 사법적으로, 의학적으로 세 번씩 죽음 문턱에 섰던 그에게 아직도 고비가 남았을까. 그는 그저 운명에 맡길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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