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외투쟁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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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태우(盧泰愚)씨 비자금사건과 5.18문제로 얽히고 설킨 지금의 정국은 군중의 동원능력이나 사자후를 토하는 웅변으로 해결될 성질은 아니다.盧씨사건은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관련당사자들의 정직한 고백이 해결의 열쇠고,5.18문제는 새로이 합의된과거청산의 의지를 살려 진상규명과 사법처리를 통해 마침내 역사를 바로잡는다는데 뜻이 있다.그리하여 권력부패의 재발방지와 이땅에 법치를 확립한다는 큰 목표를 우리는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 군중동 원이나 데모,또는 웅변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그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국가장래를 생각하는 안목과 경륜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에서 국민회의측이 강행하려는 3일의 보라매공원 집회에 대해 우려와 함께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국민회의로서는 과거와 달리 지금 국회에서 못할 말이 없고,언론을 통해 어떤 주장도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입장이다.과거 야당이 입은 있어도 국민에게 직접 알리지 못했던 상황과는 다르다.꼭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웅변을 해야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국민회의측이 굳이 장외(場外)를 선택하는 까닭은 이해하기 어 렵다.그렇잖아도 盧씨사건과 5.18문제로 사회는 불안하고 민심은 뒤숭숭한데 군중집회로얻고자 하는 것이 뭔가.국민회의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 군중집회가 있으면 편승시위의 기도가 으레 있게 마련이고,잇따라 경찰과의 충돌,최루탄.돌의 공방,교통혼란 등의 불상사가 예견되는데 지금 시국에서 이것이 책임있는 공당(公黨)과 정치지도자가 과연 선택할 일인가.
작년 민주당 이기택(李基澤)총재의 12.12기소촉구 장외투쟁을 김대중(金大中)씨가 만류했던 일이 기억난다.그리고 국민회의를 창당한 후에도 장외투쟁을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그런 지난 발언에 아랑곳 없이 보라매집회를 강행한다면 또 한번의 신용없는 처사를 추가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우리는 지금상황에서 군중동원능력이나 데모 또는 웅변으로는 정국주도를 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열려있는 장내를 두고 굳이 장외로 나가려는 과거 관념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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