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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직원'은 승진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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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박삼구 회장

#1. 4월 1일. 서울 서소문동 대한통운 본사 5층 접견실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방문객용 흡연구역이 사라진 것이다. 매점에서도 담배가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다. 대규모 사내 금연캠페인이 시작됐다. 금연을 실천한 임직원에게 가족의 확인서명이 담긴 서약서를 받아오게 한다. 집에는 ‘금연 진척도’를 붙이도록 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에서 금연 프로그램 책자를 지원받아 전국 지점에 배포했다.

#2. 대우건설은 원래 1년에 한두 번 금연침 맞기 운동을 할 정도로 사내 금연운동을 열심히 벌여온 기업이다. 그런데 2년 전부터는 그 강도가 더 세졌다. 아예 금연클리닉을 운영한다.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금연보조제를 받아 담배를 잘 못 끊는 임직원들에게 나눠준다. 금연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일산화탄소 측정까지 한다.

금연운동을 요란하게 벌이는 이 두 회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근래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일원이 됐다는 점이다. 대우건설은 2006년에, 대한통운은 올해 금호에 인수됐다. 금호는 금연기업으로 정평이 있다. 1991년 국내 처음 전 사업장 금연을 선포했다. 당시 서울 회현동 아시아나빌딩 사옥은 우리나라 금연빌딩 1호다.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94년 6시간 이상 비행거리 여객기 노선을 모두 금연으로 만든 세계 첫 항공사로 기록됐다. 이듬해부터는 모든 노선의 흡연을 금했다.

금호의 금연운동은 8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성용 명예회장(작고)을 필두로 금연에 동참한 142명의 임직원이 매일 담뱃값에 해당하는 푼돈을 모아 ‘금호건강복지기금’을 만들었다. 89년엔 사내 금연표어를 현상 공모했다. 당선작은 ‘이제 흡연자는 당신 혼자뿐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전 임직원 집에 가정통신문을 보내 집에서도 금연을 독려하도록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우리의 가장 값진 자산은 인간입니다. 인간 자산을 아끼는 첫걸음은 건강입니다”라는 게 통신문의 내용이었다. 임직원들을 떨게(?) 만든 건 흡연자에 대한 인사 불이익 방침.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고는 각자의 권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흡연 직원을 승진시키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항공기 내 금연에 앞장선 사람은 박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삼구 현 그룹 회장이다. 그는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 미주 노선을 탔다가 얌체 흡연 승객들을 접하고 분개했다. 좌석은 금연석인데 몰래 비행기 뒤쪽 흡연구역으로 와서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많았던 것이다. 또 흡연석 뒤에서 일하는 여승무원들이 콜록거리는 모습을 보고 “우리 직원부터 보호해야겠다”고 작심했다.

기내 금연이 한창이던 95년, 아시아나항공 인트라넷 익명게시판에 한 직원의 글이 올라왔다. “기내 흡연은 금지하면서 기내에서 담배를 파는 게 말이 됩니까”라는 내용이었다. 기내 면세품 판매순위에서 담배는 술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품목. 하지만 박 회장은 담배의 기내판매를 중단했다. 이 회사 강주안 사장은 “97년 외환위기와 2001년 9·11 테러 때 회사 수익이 급감해 담배를 다시 팔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최고경영진은 담배 불매 원칙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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