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늦깎이 ‘하버드대 박사’ 서진규

중앙일보

입력

‘가난에 앙갚음’ 서진규의 공부 비법 ‘불굴의 하버드대 박사’로 유명한 서진규(60·여)씨를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몇년 전부터 여기저기 인터뷰 많이 했는데, 저에 대해 공부 많이 해오셨나요?” 기자가 “아버지는 엿장수 어머니는 술장사, 세 차례 이혼…” 까지 풀어놓자 “그럼 어떤 얘기를 해드리면 될까요” 라고 물었다. “공부한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딸 앞에선 공부하는 모습 노출
분위기 만들어 줘"


  경남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서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글을 읽지 못했다. 생활고에 지친 부모는 딸자식 공부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나마 여덟 살 터울의 언니가 “저능아”라고 구박하며, 한글을 깨치게 해준 게 고마울 뿐이다. 6학년 때 언니가 시집가면서 첫 역경이 찾아왔다. 집 살림살이가 4남2녀 중 막내딸인 서씨 몫으로 떨어졌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밥 짓고, 한겨울에도 강가에 나가 얼음물로 빨래했다. “왜 나만 시키느냐”고 대들었지만 매만 벌 뿐이었다. ‘박사’를 목표로 잡은 건 이때였다.
  담임이 “박사가 되면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번듯하게 박사가 돼 일만 시키는 부모에게 앙갚음하고 싶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힘들 땐 두 가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나는 자신같이 불쌍한 딸들을 구하는 꿈, 또 하나는 공부를 포기하면 “제까짓 게 그럼 그렇지”하며 남들이 비웃는 상상이었다. 서씨는 이를 당근 및 채찍형 상상이라 표현했다.
  그는 제천여중·풍문여고를 우등으로 졸업했지만 대학은 원서도 못 냈다. 그 후 안 해본 일이 없다. 가발공장 직공, 골프장 식당종업원, 회사 경리…. 23세 때 부잣집 아들을 사랑했고, 실연의 아픔을 맛보았다.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 생활은 험난했다. 첫번째 이혼을 결심한 뒤 미군이 됐다. 이제 박사의 꿈은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런데 42세 되던 해 ‘서 대위’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동북아 지역전문가로 뽑혀 대학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대학원은 하버드를 택했다. ‘하버드 졸업장이면 아무도 무시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5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무조건 하루 200쪽 이상을 목표로 반복해 암기했다. 그 후 박사과정 대상자로 뽑혀 58세의 늦깎이로 박사를 따냈다. 그는 “C형 간염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지만 ‘금의환향’이라는 당근형 상상으로 버텼다”고 회고했다.
  서씨는 딸 조성아(32·미군 대위)씨와 하버드 동문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한국·독일·일본 등 많은 국가를 떠돌며 딸을 하버드대생으로 만든 비결은 뭘까. “호기심을 자극하라.”
  해외 파견 근무 때 딸을 국제 학교에 보내지 않고 꼭 현지 학교에 보냈다. 여러 문화에 관심을 갖게하기 위함이다. 딸은 처음에 항상 꼴찌였다. 서씨는 “좌절을 맛봐야 성적이 오르는 희열도 느낄 수 있고, 더 열심히 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10여년전부터 ‘희망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씨는 딸 앞에선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렸을 때 집안 곳곳에 외국어 만화책들을 깔아놔 호기심을 끌어냈다. 대학원 다닐땐 도서관에 데려가 함께 공부했다. “ 한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은 없다. 아이가 항상 책과 공부하는 분위기에 노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뿐.”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