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후보 초청해 초등학교 동문회 연 30명에 과태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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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부산 사직야구장 관중석에서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가 6·4 재·보궐선거에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오후 7시쯤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 식당. 강동구 A초등학교 동문회의 임시총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30명. 이날의 화제는 같은 학교 출신 김모(44)씨였다. 김씨가 4일 실시되는 서울시의원 보궐선거에 모 정당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지역구는 강동구 천호동이고, A초등학교는 지역구 안에 있다. 동문회 도중 누군가 “기왕 모였으니 그 친구 이야기 좀 들어보자”고 제의했다. 참석자들도 “그거 좋다”며 즉석에서 김 후보에게 전화로 연락했다.

김 후보는 흔쾌히 초청에 응해 약 1시간 뒤 식당에 도착했다. 이후 “잘 부탁드린다”는 김 후보의 인사와 “선전을 바란다”는 동문들의 덕담이 오고 갔다. 혹시 선거법 저촉 시비가 일까봐 음식값 100여만원은 동문회비로 계산했다. 다음날 동문회장 이모(61)씨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선관위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동문회 자리에 특정 후보자를 참석시킨 것 외에도 동문회 홈페이지에 후보자를 선전하는 문구를 팝업창으로 게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선거법 103조에는 ‘누구든지 선거 기간 중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하거나 선거가 실시되는 지역 안에서 향우회·종친회 또는 동창회(동문회)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또 선거법 87조는 동창회 같은 모임의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 선관위는 지난달 30일 이씨를 포함한 동문회 간부 네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동문회 모임에 참석했던 30명 전원에게는 1인당 76만원씩 모두 22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키로 했다. 선거와 관련해 금품·음식물을 제공받은 사람에겐 최고 50배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규정(선거법 261조)에 따른 것이다. 정작 김 후보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동문들의 초청에 응했다는 이유로 검찰 고발과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율이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되자 각종 소모임을 통해 표심을 조직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초등학교 동문회가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가 후보자를 뺀 동문회 간부들만 고발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문회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동문회장 이씨는 “처음부터 선거운동을 위해 모인 자리도 아니었고, 오랜만에 열린 동문회에 갑작스레 초청받은 동문회 간부인 김 후보가 인사만 하고 간 정도”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선거법에 저촉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김 후보도 본인 때문에 동문들이 검찰에 고발되고 과태료를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이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김 후보는 “갑자기 연락을 받고 지나가는 길에 들러 의례적 인사만 했을 뿐 구체적인 지지 부탁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정작 지역구 유권자는 5명도 채 안 되는데 지지 결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선 한나라당 배대열 시의원이 지난해 말 총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자진 사퇴하면서 김 후보 등 3명이 출마해 4일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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