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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특별교부금 축소하고 사용 내역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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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육과학기술부 간부들의 모교·자녀학교 특별교부금 지원 파문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어수룩하고 허술한 나라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씨 부탁을 받고 사찰에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제 돈인 양 퍼준 사건과 중첩되면서 이런 의구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감을 넘어 이제 두려움마저 느끼는 상황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원칙도 없이 공직자 멋대로 쓰이는 이런 식의 국가 운영에 대해 믿음을 갖기 어려워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인 올해를 ‘선진화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런 이 대통령이 먼저 새겨둬야 할 게 있다. 이번 특별교부금 파문에서 보듯 제도와 사람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선진화는 헛구호에 불과할 수 있음을 말이다.

교과부의 특별교부금과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돈은 특별한 지역 현안 수요를 위해 정부가 지방에 떼주는 국민 세금이지만 국민이 그 실체를 알 도리가 없다. 명확한 배분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되기 일쑤고 세부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세금이 엉뚱하게 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관 쌈짓돈’ ‘정치인 로비자금’ ‘지역 선심성 예산’이란 비아냥이 따라다니겠는가.

교과부의 특별교부금만 해도 그렇다. 올해 배정된 1조1000억원이 넘는 돈 가운데 30%가 지역교육 현안사업에 쓸 수 있는 돈으로 법에 지원 절차와 대상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이러니 장관이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선물 주듯 특별교부금을 무원칙하게 지원하는 행태가 벌어진다. 정치인들도 이런 돈을 놔둘 리 없다. 자신의 지역구 학교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하라고 교육부를 다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 9400억원 규모의 행안부의 특별교부세도 나을 게 없다. 지방의 실수요는 뒷전이고 여야 정치인의 나눠먹기용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러니 타당성 없는 사업에 세금이 지원되거나 용도 외로 유용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국가 시스템이 지금껏 운영된다는 게 놀랍고 개탄스럽다. 노무현 정부만 해도 집권 초에 ‘투명성이 부족한 특별교부세를 축소 또는 폐지해야 한다’며 개선 의지를 보였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국민과 국민 세금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정부와 국회가 직접 수술칼을 들기 바란다. 더 늦기 전에 특별교부금·교부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특별교부금·교부세 집행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부터 선행돼야 한다. 감사원이 나서 과거의 폐해를 조사한 뒤 잘못을 바로잡고 가는 게 옳다.

기본적으로 특별교부금·교부세의 규모를 확 줄여야 한다. 예기치 못한 수요에 대해서만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른 지방재정 지원 수단인 보통교부세, 양여금,국고보조금 등과 성격이 유사한 특별교부금 항목은 폐지해 일반예산으로 돌리는 게 바람직하다. 자의적 사용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지되는 특별교부금에 대해선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정·교부 기준을 명문화하고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실수요와 무관한 정치인의 로비가 줄어들고 장관·관료의 재량권이 끼어들지 못한다. 사후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사후 승인·심의는 물론이고 현장 감사를 통해 사업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점검해야 한다. 지금처럼 광역단체별로 서류 검토만 하는 형식적인 감사로는 안 된다. 감사원이 해당 기초단체별로 현장 감사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아야 마땅하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며, 그게 보장돼야 민주사회다.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는 어이없는 행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건 선진화를 지향하는 정부도, 국가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