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통일 큰돈 필요할 때 대비 매년 예산 1% 북한기금 모으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1108달러.

2006년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한국은행 자료)이다.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1430달러), 내전에 시달린 아프리카 앙골라(1970달러)에도 못 미친다. 같은 해 한국은 1만8372달러였으니 16분의 1도 안 된다. 그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1.1%였고,인구 1000명당 영아사망률은 55명이었다. 양문수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런 현실에선 남북 간의 경제공동체 구성은 요원하고 시장경제 논리에 따른 교역도 힘들다”고 말했다. 평화가 유지되려면 북한의 경제적 안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래선 어렵다는 얘기다.

18대 국회가 이제 대책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 국회가 맡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또 예산 심의권을 갖고 있다. 정부가 예산의 1%를 매년 대북 지원을 위해 떼어내려면 국회가 동의해 줘야 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의 대북 지원은 퍼주기 논쟁을 불렀다. 이 같은 논란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매년 예산 1%를 적립하자는 것이 중앙일보의 제안이다. 이렇게 모은 돈을 국민 합의가 있을 때 쓰면 소모적 논쟁을 피할 수 있다. <관계기사 3면>

18대 국회는 원 구성을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아 내년도 예산 심의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1% 적립안을 논의하려면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정부 예산은 174조9850여억원(일반회계 기준)이다. 1%는 1조7500억원. 이를 10년간 모으면 17조5000억원의 기금이 모인다. 통일이 되거나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 등으로 큰돈이 필요해질 때에 대비하는 방법도 바로 이 같은 적립이다. 물론 국민 동의 아래 매년 그 반을 쓰고 반을 적립하는 등의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민간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낭비되는 돈이 연간 15조원(환경부 추산)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북한 동포를 위해 낭비되는 음식물 10% 줄이기 운동을 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국의 사찰과 교회 등에서 헌금의 1%를 갹출해 북한을 돕는 기금 재원에 충당하는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논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밥을 짓기 전 몇 숟가락 덜어내던 마음을 되살리는 일이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예산 1% 대북 기금 적립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국민의 이해 속에서 이뤄지면 평화·경제 투자이자 통일 투자가 된다”고 말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도 “특히 북·미, 북·일 관계 개선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해 북한에 대규모의 지원이 필요해질 가능성을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종자돈을 모아 놔야 한다”며 “정치권을 대표하는 국회가 예산 1% 대북 기금 적립에 정부보다 먼저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북 지원에 정치적 부담이 적은 보수 여당이 먼저 움직이는 게 정쟁을 줄인다”고도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북 지원 기금을 적립하면서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건을 놓고 남남 갈등이 촉발될 우려가 있고, 북한을 자극할 경우 기금 활용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가 미리부터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