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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산으로 들어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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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솔베이그의 노래’ 베르겐

노르웨이 여행은 피오르 여행과 동의어다. 피오르를 빼고 노르웨이를 얘기할 수 없고, 노르웨이를 빼고 피오르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관문이 되는 남서 해안의 항구 도시가 베르겐이다. 굽이굽이 해안선을 쫓아 유럽 최북단까지 가는 쾌속선이 매일 출발하는 곳. 하지만 곧장 배를 탈 순 없다. 그러기엔 베르겐은 너무 많은 볼거리를 가졌다. 바겐 만을 향해 삼각지붕을 맞대고 서 있는 목조 건물들은 중세 한자동맹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1979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플뢰엔산은 표고 370m의 특급 전망 포인트. 전망대에 서면 화사한 파스텔톤의 베르겐 시내와 항구 주변의 새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그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노르웨이의 ‘국민 음악가’ 에드바르트 그리그가 살던 곳이다. 북해의 한기를 머금은 찬 빗줄기를 맞으며 그의 살림집과 작업실을 둘러봤다. 그리그는 영광뿐 아니라 상처도 많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니나는 고종 4촌 여동생이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조국 노르웨이의 독립과 아이를 많이 갖는 게 평생의 꿈이었지만, 딸 크리스티나는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죽었다. 그의 키는 약 1m50㎝였다. 건장한 바이킹의 후예들 틈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일까? 살림집에 걸린 그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활짝 웃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늘 앉던 식탁 맞은편에 걸려 있는 아이들이 뛰노는 그림, 작업실 의자에 층층이 쌓인 ‘키높이’ 방석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살림집과 작업실 사이에 새로 지은 콘서트 홀 객석에 앉아 MP3를 틀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제2 모음곡 4번 ‘솔베이그의 노래’.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된 단조의 노래는 더없이 구슬펐다. 착각이었을까? 무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비에 젖은 작업실, 또 그 뒤편 먹빛 피오르의 울음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렸다.

숨막히는 ‘모닝’ - 예이랑에르 피오르

베르겐에서 출발하는 쾌속선 후티루텐은 서해안 피오르를 따라 노르웨이 남북을 왕복한다. 도중에 거치는 항구가 총 34개. 종착역인 키르케네스까지 편도 6일, 다시 베르겐으로 돌아오는 데 왕복 11일이 걸린다. 물론 풀코스를 다 채울 필요는 없다. 유럽 최북단인 노르카프나 북극으로 가는 관문인 트롬쇠, 더 짧게는 피오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면 예이랑에르에서 내릴 수도 있다.

베르겐에서 예이랑에르까지는 배로 채 하루가 안 되는 거리다. 오후 8시에 출발하면 이튿날 정오를 조금 넘겨 닿는다. 배 위에서 북국의 아침을 맞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다. 이맘때 북위 66도 위쪽 지방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비교적 남쪽인 베르겐·예이랑에르의 경우 오후 10시를 넘겨 해가 져 이튿날 오전 4시면 다시 뜬다. 하루의 대부분이 낮이니 아침과 밤이 귀한 셈이다.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 페르귄트 제1 모음곡 1번 ‘모닝’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짙은 연무를 드리운 피오르, 물길 건너 저편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기묘묘한 절벽, 그 틈새틈새 자리잡은 빨간 지붕의 집들…. 그리그가 ‘모닝’을 쓸 때도 필시 이 신비로운 아침에 영감을 받았으리라.

예이랑에르 피오르는 노르웨이의 4대 피오르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최고 높이 1498m에 이르는 험준한 산맥 사이로 파고든 16㎞의 물길. 계곡은 네 가지 색깔이다. 하늘은 맑은 코발트 블루, 그 아래 채 눈이 녹지 않은 산 정상은 흰색, 울창한 침엽수림이 덮고 있는 계곡은 짙은 녹색, 산 높이만큼 깊다는 물은 짙은 청색이다. 여기에 실낱처럼 흩날리는 하얀 폭포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눈 녹은 물이 빙하가 할퀴고 간 생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 모든 색깔을 한번에 보자면 배에서 내려 산에 올라야 한다. 플리달스주베·달스니바 전망대가 가장 유명한 포인트다.

햇빛 찬란한 ‘봄의 소야곡’ - 오슬로

베르겐과 예이랑에르가 역사와 전통, 대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라면 수도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4월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는 어느새 명물이 됐다. 두 가지가 특징이다. 첫째는 32m 높이에서 바다로 완만하게 빠져드는 사선 지붕. 지붕인 동시에 누구나 걸어 오를 수 있는 산책로다. 고고하고 근엄한 여느 도시의 오페라하우스와 달리 친근하기 그지없다. 두 번째는 내외가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것. 외벽은 지붕을 포함해 전체가 극단적인 직선이다. 둥근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반면 내부 공연장은 직선이라곤 하나도 없는 원형이다. 계단도 없이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달팽이 모양 통로로 연결된다. 관광객들은 이 ‘신기한’ 건물 내외를 오가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공연까지 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마침 공연이 없는 날이란다.

오페라하우스를 포함한 주변 풍광을 둘러보는 또 다른 방법은 ‘바다’다. 시청 앞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런치 크루즈 배를 탔다. 피오르 크루즈 때를 생각하고 두툼하게 옷을 껴 입었지만 착각이었다. 남쪽인 오슬로 앞바다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 그 위로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새하얀 요트, 그 뱃전에서 싱싱한 북해산 새우를 곁들인 맥주 한잔! MP3에선 노르웨이 출신의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의 ‘세레나데 투 스프링’이 흘러나왔다. 오슬로에선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게 너무도 쉬웠다.



Tip

■ 노르웨이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베르겐으로 가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암스테르담까지 10시간, 베르겐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서머타임제가 시작돼 현재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둘러볼 수 있는 쾌속선 후티루텐 정보는 www.hurtigruten.com, 배와 기차·버스 등을 연결한 피오르 여행 패키지 상품 ‘노르웨이 인 넛셀’ 정보는 www.fjordtours.com에서 얻을 수 있다. 기타 노르웨이 여행 정보는 스칸디나비아 관광청 홈페이지(www.stb-asia.com) 참조.

■ EU에 가입하지 않은 노르웨이는 유로 대신 별도의 화폐를 쓴다. 1크로네(NOK)가 약 208원 안팎. 노르웨이의 물가는 가위 ‘살인적’이다. 핫도그 하나, 맥주 한 잔을 사는 데도 우리 돈으로 1만원이 훌쩍 넘게 든다. 도시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대중교통과 주요 박물관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관광카드를 사는 편이 그나마 싸게 먹힌다. 베르겐과 오슬로엔 각각 베르겐카드, 오슬로카드가 있다.

<베르겐·올레순·오슬로> 글·사진=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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