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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중국 퍼스트레이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중국 당(唐)나라 때의 요랑(娘)이란 후궁(後宮)은 가냘프고아리따우며 춤을 잘 추기로 유명했다.그녀가 비단 천으로 발을 둘둘 감아 구부러진 초승달 모양을 만들고 금련(金蓮)사이에서 날아갈 듯 춤을 추면 그 모습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이것이 전족(纏足)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후 전족은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혀 왔다.초기엔 궁중과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만 유행했으나 차츰 중.하류층,심지어 노동계층의 여성들까 지 선호하기에 이른 것이다. 20세기초 5.4운동을 계기로 여성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전족의 풍습은 「신체상의 박해」로 간주되었다.초창기 중국의 여성운동이 전통사회의 뒤틀린 여성상(像)으로 지목한 것은 이를 포함해 다섯가지였다.정치상의 권리가 없고,경제적으로 독 립하지 못했으며,혼인의 자유가 없고,교육받을 권리가 없다는 것,그리고 신체상의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었다.청말(淸末)의 사상가였던 양계초(梁啓超)가 남성에 대한 여성의 가치란 「첫째는 일을 해주는 것이고,둘째는 노리갯감이 되는 것」이 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도 성차별의 흔적은 구석구석에 남아있지만 1세기 전과 비교하면 오늘의 중국 여성들은 상당한 권리를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전국인민대표대회의 여성 참여율도 20%를 넘어서는 등 사회모든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들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주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전통사회의 여성상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그같은 중국 여성의 상반된 모습을 극명하게 대변하는게 저우언라이(周恩來)전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 한국을 방문중인 장쩌민(江澤民)총리의 부인 왕예핑(王治平)여사다.덩잉차오가 혁명의 원로로서 여권신장에도 앞장서는 등 일평생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다면왕여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따라서 뉴스의 대상이 된적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다만 남편에 대한 내조(內助)등 주부로서 최선의 역할을 다 해왔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으니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는지는 생각하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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