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117) 경기 고양 덕양갑 한나라당 조희천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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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으로 인해, 17대 총선은 정치 개혁이 오히려 후퇴한 선거로 기록될 겁니다. 지금은 유권자들이 오로지 친노(親盧)냐, 반노(反盧)냐로 후보들을 구분할 뿐입니다. 그 와중에 정책 경쟁, 인물 경쟁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대선 2라운드를 치르는 기분입니다.

경기도 고양 덕양갑에서 출마한 조희천(35) 한나라당 후보는 “한나라당의 지지도 추락은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올인 전략에 빠져든 결과로, 한나라당의 전략적 미스”라고 규정했다. 그 결과 총선 구도가 흑백 대결 상황으로 대치됐다고 말했다.

“무조건 열린우리당이 백(白)인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지역 민심은 거의 이 당의 유시민 후보 쪽으로 기울었어요. 그래도 저는 상황을 낙관합니다. 한나라당 지지 세력이 다시 결집할 거로 봅니다. 특히 중도세력이 탄핵 가결 후의 흥분 상태에서 벗어나 이성을 회복할 거라 믿습니다. 홍수로 침수가 돼도 시간이 지나면 물이 빠지게 돼 있어요.”

참여정부의 이론가 유시민 의원과의 한판 승부를 노렸던 그로서는 허탈할 법하다. “유씨가 국회의원이 안 됐다면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공언하는 그다. 더욱이, 관점에 따라 ‘탄핵 역풍’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 노 대통령을 콕 찍어 ‘내가 노무현보다 대통령을 더 잘할 수 있는 29가지 이유’란 긴 제목의 책을 펴내 이 정부의 심장을 겨눈 터다.

조 후보는 “한나라당이 탄핵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번 탄핵은 민의를 수렴한 것이라 믿는다”고 강변했다.

“탄핵에 찬성한 193명의 의원들에 대해 ‘당리당략에 치우쳤고, 지역주의에 편승하려는 세력’이란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대의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탄핵을 결정할 권한은 밉든 곱든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있죠. 탄핵 소추가 잘못이면 국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면 됩니다.”

한나라당에 대해선 공과를 따질 때 공이 더 많은 당이라고 주장했다. 이 당이야말로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세력이라고 강변했다.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번 선거에선 당으로부터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털어 놓았다.

▶조희천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금 배지가 탐났다면 조선일보에서 더 경력을 쌓고 40대 후반이나 50대에 출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정치상황이 위기이고, 그대로 있기엔 너무 다급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것. 사진은 조선일보 기자 시절 편집국에서 포즈를 취한 조 후보.

조 후보는 지난해까지 9년간 조선일보 기자로 있었다. 재경부·산자부 등 주요 경제 부처를 출입했고, 민주당 출입기자 생활을 했다. 그 말고도 정치인이 된 기자들은 많다. 조선일보 출신으로는 고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 ,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있다. 그는 ‘과연 정치에 입문할 것이냐’로 지난해 8월부터 고민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당사는 공천장 받을 때 처음 가 봤다고 말했다. 기자 시절 민주당을 출입해 한나라당보다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당직자, 의원 보좌진과 더 가깝다고 덧붙였다.

그의 경쟁 상대는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이다. 그는 “버거운 경쟁자이긴 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노 대통령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측근이라고 말한 유 의원은 그의 서울대 10년 선배이기도 하다.

“유 의원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립니다. 한마디로 그는 대중 정치인이 아닙니다. 지역의 대표자로는 맞지 않다는 거죠. 지역에서 한 일이 뭡니까?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노빠’ 정치인으로 통하지만, 지역구를 위해 예산 한 번 가져온 적이 없어요. 지역 발전엔 관심이 없다는 얘기죠. 지역구 의원은 지역 대표로서 주민들의 정치적 염원을 실현할 책임이 부여된 자리입니다. 중앙 정치무대로 나아가는 통로로 활용되어선 안 됩니다.”

▶ 조희천 후보는 자신의 저서인 ‘내가 노무현보다 대통령을 더 잘할 수 있는 29가지 이유’에서 “정치 기술자가 아닌 지도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나라의 기본축을 흔들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공갈·협박하지 않겠으며, 방송을 장악하지도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지미연 월간중앙 기자

그는 일산 지역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철새정치인들의 텃밭이라는 것. 16대 총선 당시 4개 선거구 모두 민주당이 석권했는데, 일산갑 당선자는 열린우리당으로, 덕양을은 한나라당으로 갔고,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덕양갑의 경우 유 의원이 당선됐다. 조 후보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제발 해당 지역에서 절차탁마한 정치 신인을 키워 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나오는 덕양갑은 세대별로는 50~60대가 20여%, 20~40대가 70여%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훨씬 많다. 그 역시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세대 기반은 젊은 층이고, 한나라당의 세대 기반은 중년층이기 때문이다.

덕양갑을 포함해 고양은 젊은 층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다. 그런 만큼 최대 관심사는 교육이다. 그런데 덕양구는 인근 일산에 비해 크게 낙후되어 있다. 그는 “군사보호시설 등 그린벨트 지역이 많아 개발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반면 대대로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전형적인 도시가 아니고 평택·파주 같은 도농 복합지역이란 것도 이곳의 특징.

“일산 못지 않은 신도시로 가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풍요로운 삶,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한나라당보다,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국가 운영의 기본틀과 비전을 평가해 주십시오.”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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