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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반노무현’ 강박에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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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0년 만에 등장한 보수정권 이명박 정부가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출범 시점의 무능한 국가운영으로 이토록 낮은 국민 지지를 기록한 경우는 유례가 없어 현 정부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유일한 대선 지지 요소였던 경제마저 공약 자체를 거둬들일 정도니, 유예했던 다른 민주적·사회적 핵심 가치와 영역에서의 국민 불만은 훨씬 크다.

더욱 큰 문제는 현행 헌법상 다음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 이전에는 총선조차 없어 최악의 무능을 반복해도 권력배분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무능할수록 그들과 국민을 잇는 여당의 역할이 더욱 결정적이다. 그러나 출범 이후 대통령과 정부의 준비 부족과 무능에도 한나라당의 대안 제시 능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권 시작부터 여당과 정당민주주의의 실종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실종이 문제의 근본 원인의 하나임을 대통령을 포함해 여권 인사들은 모르고 있다는 데 문제의 또 다른 심각성이 존재한다. 초거대 여당의 역할은 왜 이명박 정부하에서 더욱 중요한가?

 첫째는 대통령의 특성 때문이다. 그것은 정당정치를 폄하하는 비민주적 업적주의로 요약된다. 업적을 중시하는 CEO 출신 대통령의 초기 성과가 형편없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당연하다. 민주주의에서 정부와 국민을 연결·소통하는 의회와 정당의 역할이 필수적임은 물론이고 때론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사적 영역 출신으로서 탈여의도 정치를 추구하며 대화 대신 지시, 국민 마음 대신 상의하달을 중시하다 보니 국민은 물론 여당마저 소외되어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통령의 출신과 스타일이 그래서 한나라당의 역할과 의회정치 복원은 더욱 막중하다.

둘째는 의회 구성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볼 때 18대 국회는 한국 정도 사회경제 발전국가의 정치·사회·이념 균열 구조와 비율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보수의 ‘과대 대표’와 진보의 ‘과소 대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적, 민주적 의제를 요구하는 세력들은 어디로 달려갈 것인가? 보수 정부에 이어 의회와 거대 여당마저 의제수렴에 실패한다면 남은 방법은 시민의 직접저항에 의한 교정 노력뿐이다. 그것은 운동의 정치를 부활시켜 보수 정부와 시민사회의 정면 충돌이라는 민주화 이전의 대결 양상을 재연할 것이다. 촛불시위에서 보듯 거리대결을 부활시킨 요인이 정부의 무능과 대화 부재이기에 의회와 여당의 수렴과 타협 능력은 너무 중요하다. 4·19, 부마 항쟁, 6월 항쟁 등 보수 정부를 해체한 직접저항이 대통령의 일방통행에 더해져 당시 거대 여당의 역할부재와 직결되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는 실용주의 문제다. 즉 ‘정치논리’에서 ‘정책논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국가이익과 업적을 위해 이념과 정책선택의 폭을 넓게 한다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반대로 ‘반진보’ ‘반노무현’의 틀에 갇혀 문제를 접근하는 이념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정부를 견인하고 야당과 경쟁하며 시민사회를 포용하기 위해서라도 냉혹할 정도의 실용주의로 전환, 이념을 넘어 정책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혀야 한다.

끝으로는 여권 내 권력구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박근혜(계)를 내치자니 국정 수행이 어렵고 전면 끌어안자니 도전이 부담스러운, 이른바 ‘파국적 균형’이 요구하는 상호 협조와 상호 견제의 미묘한 공존 상황을 말한다. 단임의 특성상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으로서의 이명박과 박근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미래 권력의 도움 없이는, 즉 정당민주주의를 통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동시에 집권 정당이자 미래 권력인 한나라당과 박근혜 역시 정부에 대한 견제와 협조를 통한 성공을 통하지 않고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공동 실패로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