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사돈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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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속담사전을 들춰보면 사돈관계를 다룬 것들이 의외로 많다.대개가 그 「관계의 속성」을 나타내는데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거나 「거북하기가 사돈네 안방같다」 따위의 속담들은사돈간에 서로가 지켜야 할 거리를 암시하고,「사 돈 남 말 한다」거나 「사돈의 팔촌이다」 따위의 속담들은 자식들이 혼사를 맺었을뿐 가문끼리는 결국 아무런 관계도 아님을 뜻한다.
흔하게 쓰이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딸네 사돈은 꽃방석에 앉히고 며느리사돈은 가시방석에 앉힌다」는 속담이 있다.딸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시킬는지 모르니 그 사돈에게는 후하게 대접해야 하고,며느리에게는 봉양받아야 할 입장이니 그 사돈 에게는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지나치게 이기적이랄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사돈을 대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같은 사돈간의 이기주의는 혼사가 자식들 당사자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문간의 결합」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풍조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는데서도 잘 드러난다.그래서 정치적.경제적으로 고위층이나 부유층의 혼사일수록 누구와 누구가 결혼하느냐보다어떤 가문과 어떤 가문이 사돈을 맺느냐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 경우 당사자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니 부모들의 이기주의 탓에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셈이다.
사회의 이목을 가장 집중케 하는 것이 권력과 돈을 매개로 한가문간의 혼사다.권력을 가진 가문과 돈을 가진 가문이 사돈을 맺게 되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격」이랄 수 있겠지만 그 「완벽한 조화」에는 항상 위험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그 사돈인 기업총수들이 검찰에 소환되는등 곤욕을 치르는 것이 좋은 본보기다.이미 노태우(盧泰愚)씨가 재임중이었을 때부터 슬금슬금뒷소문으로 나돌던 사돈간의 유착 관계가 이제 그 베일을 벗을 단계에 접어들었다.우리네 인생이란 다소 부족한 것도 있어야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법인데 조금만 부족해도 그걸 메우려는 완벽주의가 결국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역시「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옳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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