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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오르한 파무크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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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가볍고 애절한 사랑 노래, ‘위스크다르’로 우리에게 알려진 나라 터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왠지 지고도 기분이 좋았던 나라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무크(Orhan Pamuk)가 내한했다. 그도 한국이 마음이 편했던지 밝고 어수룩한 표정이었다. 유난히 자신의 독자가 많은 나라라는 사실이 그의 표정을 밝게 만들었을 터이고, 본성적으로 끌린다는 사실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에 어수룩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예리한 촉수에 한국과 터키가 겪어온 문명진화의 공통적 고뇌가 감지되지 않을 리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은 그의 문명론에서 터키를 분열국(torn state)으로 규정했다. 별로 명예롭지 못한 이 개념은 오늘의 터키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덫’이다. 터키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이슬람과 기독교가 엇갈리는 교차점에 위태롭게 앉아 있음을 뜻한다. 분열국의 지배자들은 이런 운명을 두 문화를 잇는 ‘가교’로 해석하길 좋아하는데, 민중에게는 항상 불안정한 현실과 정체성 혼란으로 다가온다. 마치 지진위험지대에 사는 주민들처럼 문명 단층선이 통과하는 나라엔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질적 문화가 부딪치는 ‘불화의 향연’에서 불후의 명작이 태어난다면, 파무크는 ‘문명 충돌’의 단층을 터키 고유의 정서로 촬영한 작가다. 그가 이 충돌의 불꽃에 치명적 화상을 입은 민중의 내면을 그린 문제작 『눈』을 집필할 때 9·11 테러가 발생했고, 2년 뒤 출간되었기에 노벨상위원회는 당연히 그 작품에 주목했다. 분열국의 ‘찢긴 내면’은 소설의 주인공 ‘카’의 시선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령 이렇다.

독일에서 살아온 터키 지식인이자 시인인 카는 잠시 귀국해 동쪽 끝 소도시 ‘카르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빈발하는 소녀들의 자살사건이 의미심장했던 탓이다. ‘카르팔라스(눈의 궁전)’ 호텔에 여장을 푼 카는 ‘예실유르트(푸른 조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줌후리엣(공화국)’ 신문을 읽는다. 혹시 무슬림 혁명가 무흐타르와 이혼한 옛 애인과 마주칠까 조바심하면서. 카는 무슬림 과격파의 감시와 테러에 시달리면서 이슬람 문화의 본질에 깊숙이 진입한다. 이슬람의 토속적 세계와 연을 끊지 못하는 민중들은 소도시 도처에 깃발처럼 나부끼는 아타튀르크(케말 파샤)의 조국 근대화 구호와 결탁하면서 살고 있다. 강요된 결탁의 울분은 결국 소녀들의 타의적 자살, 서구적인 것에 대한 청년들의 테러, 그리고 주인공 자신에 대한 끝없는 경계와 배척으로 발현된다. 시인은 두 세계 사이에서 숨을 쉬지 못한다.

1970년대까지 터키가 그랬다. 이후 터키는 민중의 종교적 열망에 부응해 이슬람 정체성 부활을 허용했다. 여성들은 다시 히잡을 쓰기 시작했고, 4개 주요 일간지와 30개 TV 채널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전파했으며, 90년대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이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장악하기도 했다. 지배층과 민중 간의 분열된 선택이 빚는 두 문명 사이의 반복적인 진자운동이 터키 수도 이스탄불을 화려한 문명 도시로 바꿔놓기는 했지만, 유럽의 일원이 되기에는 너무 반서구적이고, 이슬람의 종주국을 표방하기에는 ‘너무 불순한 과거’를 감춰야 한다. 진자운동의 물살은 경제현실에도 짙은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파무크가 노벨상을 받기 1년 전, 필자는 초원길을 한나절 달려 ‘카르스’를 찾았다. 그 도시는 마침 불었던 거센 흙바람 속에서 전통의 두터운 켜를 둘러쓰고 60년대 한국의 촌락처럼 엎드려 있었다. 그날 밤 마케도니아풍 호텔 바에서 악사들이 극동의 이방인에게 위스크다르를 연주했다.

조국의 그런 현실이 떠올랐던 탓인지, 파무크는 김영희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발전상이 부럽다고 했다. “훨씬 더 커지고, 훨씬 더 부자가 된 것 같다”는 그의 토로에는 문명 핵심국들이 쏟아내는 온갖 급류에 휘말린 채 터키만큼이나 쓰라린 세월을 보냈던 한국, 그럼에도 용케 살아남은 한국에 대한 인정스러운 위로가 묻어났다. 4대 강국의 욕망이 이처럼 치열하게 교차됐던 영토가 한국 말고 또 있으랴. 박경리 같은 작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럼에도 파무크의 부러움을 샀던 것은 터키가 버거워하는 문명의 짐이 한국에는 다행히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인종·종교 분쟁에서 면제된 것은 천혜의 선물이며,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 간 모순을 어지간히 순치했다. 몸이 가벼워진 것이다. 그래서 너무 경박해졌을까? 파무크는 칭찬 끝에 “너무 그렇다고 싶을 정도로”라는 첨언을 달았는데, 이는 박경리의 문학적 유언과 공명한다. ‘한(恨)의 문명’을 절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박경리와, ‘문명의 한’에서 민족정서를 퍼올린 파무크가 만났다면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