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드라마서 각광 '참군인' 장태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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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참군인」 장태완(64.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그가 다시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날 영욕으로 점철된 「스타」(육군소장)를 가슴에 묻고 사는 그가 12.12군사쿠데타를 다룬 MBC 『제4공화국』과 SBS 『코리아 게이트』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이번엔 대중의 「스타」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노태우씨 부정축재사건에 진저리를 치고 있는 국민이 비록 드라마 속에서이긴 하지만 「참군인」 장태완의 모습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벌써 정치권에서는 그를 「국회의원당선 0순위」로 간주,영입 을 추진하고있지만 그 자신은 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해 헌정이 무너지고,그 결과로 국민들이고생해온 것을 생각하면 천추의 한이 됩니다.』 12.12를 「반란」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를 만난 곳은 서울대병원 입원실이었다.지난 6일 강원도철원군 6.25전적비 제막식에 참석한 뒤 건강이 악화돼 강원도지역 재향군인회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상경했다.잇따른 지방 재향군인 회 방문등으로 과로한 탓이다. 『두 드라마 모두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히 살려내고 있습니다.하지만 당시의 군사.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장씨는 이같은 이해부족으로 두드라마가 반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고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당시 1.3.5공수여단,9.20사단등 박정희대통령이 정권유지를 위해 서울근교에 배치한 「근위부대」들이 지나치게 많았던 점을 문제로 들었다.
『근세사를 살펴보면 쿠데타는 100% 근위부대에 의해 일어났습니다.12.12만해도 그렇지 않습니까.근위부대는 정권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면 자신들의 세력이 약해질까봐 쿠데타를 꾸미게끔돼 있습니다.』 10.26에 의해 비군사정권이 들어설 조짐이 보이자 위기감을 느낀 근위부대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는것이 장씨의 분석.
장씨는 『두 드라마가 이같은 점들을 밝혀주지 못하고 12.12를 몇몇 정치군인들에 의해 무작정 저질러진 것으로 표현한 것같다』며 『보다 폭넓은 안목으로 12.12를 조명했었으면 하는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진압 실패에 대해서 장씨는 『당시 국방장관과 대통령이 직무를유기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사태를 즉시 파악,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할 국방장관은 도망다니기에 바빴습니다.헌정을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도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제가 요청했던 지원병력만 즉시보내주었더라도….』 12.12는 장씨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반란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일부에 불과하다.부친은 『충신이모반자 밑에서 살 수 없다』며 음식을 거부,80년4월 세상을 떠났다. 장씨의 아들 성호군은 기관원들이 집주위를 늘 감시하는환경속에서도 81년 서울대에 합격해 장씨를 기쁘게 했으나 이도잠시.성호군이 82년 집을 나간 뒤 고향인 경북칠곡군 야산에서변사체로 발견됐다.이후 장씨는 고향 근처를 지나기조 차 두렵다고 말한다.
12.12「반란자」중 하나였던 노태우씨에 대해 장씨는 『이번부정사건이 그 자신의 과오이긴 하지만 그도 불행한 일을 당하고있는 재향군인회원이다.위로해줘야 할 입장에 있는 회장으로서 그의 죄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오히려 위 로,보통사람들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아량을 내보였다.
『나는 영원한 군인이다.환자복을 입은 나약한 모습을 절대로 국민들에게 보일 수 없다』며 사진찍기를 한사코 거부한 장씨.팔에 링거를 꽂고 병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시종 날카로운 눈초리와 힘있는 목소리를 잃지 않는 등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그대로의 기상을 보여줬다.검찰조사를 받고 진짜인지쇼인지는 모르지만 수행원의 팔에 쓰러지는 노태우씨의 나약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당당한 장씨.
그러나 그는 인터뷰도중 걸려온 손녀딸의 전화에 금세 얼굴가득웃음을 지으며 목소리까지 부드러워지는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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