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40주년 기념공연이 24일 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시작됐다. 조용필이 기타를 연주하며 열창하고 있다. [사진=JES 양광삼 기자]
효녀 딸 덕에 거제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60대 할머니는 ‘허공’을 따라 부르며 수줍게 형광봉을 흔들어댔다. 조용필의 골수 팬 50대 아버지와 함께 온 20대 아들은 ‘전설’을 눈으로 확인하며 “그의 노래를 MP3 플레이어에 다운받아 듣고 싶다”고 했다. 중년 여성팬들은 풍선을 손에 쥐고 합창하며 그때 그 시절 ‘단발머리’ 소녀로 되돌아갔다.
관객들은 이날 세상살이의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추억과 현실을 잇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음악의 힘 하나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조용필의 ‘마법’이었다.
그 마법은 공연을 성스러운 의식으로 만들었다. 40년간 국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가왕에게 팬들은 최고의 ‘헌사’를 보냈고, 가수는 최고의 무대로 보답했다. 무대에 우뚝 솟은 40m 높이의 두 개의 탑은 조용필과 팬을 상징했다.
‘당신의 음악 안에서 호흡했던 40년이 행복했습니다. 21세기인 오늘도 간절히 조용필을 원하는 이유입니다.’ 공연장 한가운데 걸린 플래카드는 공연의 의미를 압축해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은 4만2000장이 매진됐지만 팬들의 요구에 공연 직전 추가 판매를 결정, 객석을 5만 석으로 늘렸다.
객석 정리 때문에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된 공연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애니메이션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역경을 이겨내고 킬리만자로에 올라 포효하는 표범은 아픔과 고독을 위대한 음악으로 승화해낸 조용필의 페르소나였다.
이어 조용필이 ‘꿈’을 부르며 등장했다. 그는 지칠 줄 몰랐다. 두 시간 반 동안 35곡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공연 중간 돌출 무대를 이용해 팬들 옆으로 다가간 조용필은 “40년간 고통과 후회, 꿈과 희망, 사랑과 슬픔이 있었다”며 “이 모든 것을 여러분 사랑의 힘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모든 분들과 노래방에 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거의 자신의 노래로만 채웠던 평소 콘서트와 달리 ‘산장의 여인’을 노래방 애창곡이라고 소개하며 합창했다. ‘산장의 여인’은 사별한 부인 안진현씨가 좋아하던 노래다.
“여러분이 기쁘고 즐거워야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관객을 향한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조용필의 마법은 노래에만 그치지 않았다. 4개의 우람한 타워에서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왔다. 3대의 대형 LED에서는 현란한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서울 서울 서울’을 합창하는 대목에서는 불꽃놀이도 펼쳐졌다. 공연을 최고의 종합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그의 뜻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공연이 끝나도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추억 속의 재회’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 다섯 개의 앙코르곡이 끝난 뒤에야 가왕을 놓아주었다. 관객들은 최고의 가수와 함께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무대 밑의 조용필이었다. 오후 11시 넘어 공연이 끝나 ‘귀가 전쟁’에 시달렸지만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쳐 보였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장면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조용필 40주년 공연은 대전(31일), 대구(6월 14일) 등 연말까지 국내외 20여 곳(8월 미국 LA·뉴욕 공연 포함)에서 계속된다.
정현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