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30% 올리자 인도네시아 민심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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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열린 기름값 인상 반대 시위 현장에서 한 여성이 냄비를 두드리며 정부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24일 기름값을 평균 28.7% 올리자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맹은 26일 대규모 항의시위를 예고했다. [자카르타 AP=연합뉴스]

기름값 급등으로 인한 불안감이 전 세계 각국에 널리 퍼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가를 30%나 올렸다가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등 국민적 반발에 부닥쳤다. 미국에서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에너지 종말론’이 퍼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유가 인상 반대 시위=BBC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24일부터 현지 유가를 평균 28.7% 인상한다고 23일 전격 발표했다. 최근 식품 가격 급등으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던 서민들이 기록적인 유가 인상까지 겹치자 거리로 몰려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수도 자카르타의 국립대학에서는 학생 300여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에 나서자 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같은 날 자카르타 대통령궁 앞에서도 시민과 학생 등 수백 명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4일에는 자카르타뿐 아니라 자바섬의 수라바야에서도 시민 수백 명이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맹도 26일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 온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국제 유가가 현지 가격의 두 배까지 치솟으며 재정이 흔들리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1997년 재정 압박에 시달리던 수하르토 정권은 이듬해 5월 유가를 70%나 올렸다가 대규모 폭동과 약탈사태로 번져 권좌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고유가 대책으로 에너지 보조금 감면에 나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은 다음달부터 기름값 통제 제도를 없애고 7월부터 전기료도 인상할 계획이다. 지난해 125억 달러를 에너지 보조금으로 쏟아 부은 말레이시아는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액화석유가스(LPG)를 수입가격의 30~40% 수준에서 공급하고 있는 태국은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중국과 인도는 국영 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급하는 식으로 휘발유 가격을 낮게 통제하고 있어 더욱 불안한 상황이다. 인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고, 중국은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있기 때문에 유가를 인상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 종말론자=미국에서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생활 방식을 자급자족형으로 바꾸는 ‘에너지 종말론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AP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이들은 석유 생산량이 현재 최고점에 달해 앞으로 수년 내에 유전이 고갈될 것으로 믿고 있다.

‘피크오일 닷 컴(peakoil.com)’ 등 석유 고갈 관련 웹사이트에는 800여 명이 가입해 향후 대책 등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석유가 고갈되면서 각종 식량 및 생필품 가격이 덩달아 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대책으로 자급자족형 생활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집주변에 채소·과실수를 심고, 닭·양 등의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또 비누 등 기초생필품 제조법, 약초 등을 이용하는 민간요법에다 심지어 도축 방법까지도 익히고 있다. 나아가 태양열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난방용으로 나무 땔감을 미리 쌓아 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가급적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자동차 없이 사는 방식을 익히기 위해서다. 흔치 않지만 일부 종말론자는 TV마저 없앴다. 에너지 부족으로 세계가 단순했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게 분명한 만큼 미리 TV 없는 사회에 적응하자는 것이다.

또 이들은 미 행정부가 에너지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해 격렬한 사회적 동요가 일어날 것까지 우려하고 있다. 심각한 식량·에너지 부족에 시달린 시민들이 난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호신용 총기까지 쌓아 놓는 종말론자들도 있다고 AP는 전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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