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처럼 군침 도네 ‘그룹주 펀드’ 눈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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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32면

‘홍어 삼합’을 떠올리고 만든 펀드가 있다. 우리투자증권이 팔고 있는 ‘LG&GS 플러스 주식형’이다. 올 들어 투자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LG전자를 포함해 LG와 GS·LS그룹의 맛깔 난 주식을 고루 품은 게 매력이다. 이 증권사의 상품기획팀은 “변동성이 심한 장에서 우량한 투자 재료를 모아 삼합처럼 군침 도는 펀드를 만들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2월 말 출시됐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코스피 지수가 8%가량 오를 때 이 펀드는 두 배인 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원화가치 하락, 고유가 같은 시름이 깊어지면서 ‘그룹주 펀드’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악재에 방어력이 센 대형주를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량주를 골라 먹는 재미는 기본이다.

고유가·환율 상승에 맞서는 법

1년간 30% 불렸다

시장에 나온 그룹주 펀드는 10개 정도다. 삼성·LG·현대·SK그룹의 물 좋은 계열사 주식들을 원재료로 펀드를 꾸렸다.

원조는 한국운용이 2004년 여름에 내놓은 ‘삼성그룹주’ 펀드다. 이 상품의 첫 요리사였던 이영석 팀장은 삼성가(家) 14개 주식의 수익률을 점검하다가 ‘심 봤다’를 외쳤다. 주식들이 당시 3년간 수백%의 성적을 거뒀다는 사실에 즉각 모아서 펀드로 만들 생각을 했고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현재 펀드가 투자한 종목은 삼성물산(9.5%)·삼성전자(9.2%)·삼성전기(9.0%)·삼성화재(8.0%) 등 17개 삼성주다. 전기전자·서비스·금융·유통 등으로 업종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최근 1년간 수익률은 30%로, 각종 그룹주 펀드 중에서 상위권이다.<그래픽 참조> 코스피 지수는 1년간 12%가량 올랐을 뿐이다. 지금까지 펀드에 들어온 돈도 4조3000억원으로 그룹주 펀드 중에서 압도적이다.

펀드 책임자인 한국운용 백재열 팀장은 “지난해 10월 말 불거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이후 한 달간 삼성 그룹주의 주가가 떨어졌다”며 “그러나 이후 시장에선 그룹의 기초체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저가 매수세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올 들어 환율이 오르고 반도체 같은 정보기술(IT) 업황이 살아나 수익률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해 말 55만원이었던 주가가 현재 71만원으로 30%가량 뛰었다. 백 팀장은 환율 베이스가 지난해보다 질적으로 한 단계 상승한 데다 중장기적으로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가 할인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펀드 수익률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의 애널리스트들은 5월 들어 기대했던 금리인하가 이뤄지지 않아 내수주가 상승 동력을 잃었고, 수출주는 환율 강세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하나대투증권 서동필 연구원은 “환율 영향은 시차가 있기에 2분기 실적에 더 크게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유가 상승+원화 약세’가 겹쳐 인플레이션 파고가 일면 내수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CJ운용에서는 ‘카멜레온 펀드’를 팔고 있다. 삼성 주식과 일반 우량주를 함께 버무려 방어력을 키웠다. 주가가 오르면 대형주가 많은 삼성 그룹주를 사고, 시장이 약세일 땐 고배당주를 늘리는 변신 전술을 구사해 카멜레온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양투신이 판매하는 ‘e모아드림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삼성물산 등의 종목에 많이 투자하는데, 1년 수익률이 37%로 그룹주 펀드에서 으뜸이다. 온라인에서 파는 펀드로, 연 1.2%밖에 안 되는 낮은 보수는 쏠쏠한 덤이다.

기름 바다에서 맛보는 삼합

에너지 분야에 강한 SK그룹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도 나와 있다. 우리CS운용이 굴리는 ‘SK그룹 우량주 플러스’ 펀드는 SK(7.1%)를 포함해 SK에너지(7.0%)·대한가스(4.5%) 등을 많이 편입했다. 기름과 자원개발·친환경 주식들이 들어가 있어 고유가 시대에 눈길이 간다.

일단 SK그룹주 펀드의 1년 수익률은 14%로 하위권이다. 지난해 지주회사 테마를 등에 업고 좋은 흐름을 보였으나 최근엔 수익률이 별로 좋지 않다. SK에너지만 봐도 유가 상승으로 제품 값이 오르면서 1분기 매출이 56% 늘었다. 그러나 정제 마진이 줄면서 영업이익은 16% 쪼그라들었다. 다만 굿모닝신한증권 이광훈 연구원은 “유가가 뜀박질하면서 SK에너지처럼 원유가 아닌 벙커C유로 정제하는 2차 설비업체들의 실적이 잘 나온다”며 “특히 중국 쪽의 디젤 소비가 줄지 않는다. 내수가격 통제정책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한번도 값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장사가 잘되는 분위기고 펀드에도 호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CS운용 관계자는 “최근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같은 타 그룹의 IT 주식에도 많이 투자해 수익률을 보완했다”고 말했다. 특히 환율이 오르면서 국내 정유업체들은 1분기에만 1500억원의 환차손(평가액)을 입었는데 IT 종목은 환율악재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

뷔페식 삼합도 있다

미래에셋의 ‘5대 그룹 대표주’ 펀드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중공업·POSCO 같은 종목을 품고 있다. 각 그룹의 대표주자들을 모아 놓은 ‘올스타 펀드’로 볼 만하다. 지난해 2월 출시된 뒤 수익률이 50%를 넘는데,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7% 오르는 데 그쳤다. 다만 전기전자 종목의 비중이 20%를 넘고 금융·유통·화학 등이 10%로 엇비슷한 IT형 펀드라는 점을 새겨 둬야 한다. 삼성투신의 ‘당신을 위한 코리아 대표그룹’ 펀드도 닮은꼴이다. 산업 내 비중과 시장 지배력 등을 따져 15대 그룹이나 금융그룹과 관련한 종목에 투자한다. 현재는 동양제철화학·POSCO·LG전자 등이 주된 공략물이다.

그룹주 펀드에 현대라고 빠질 수 없다. 2005년 봄에 나온 현대와이즈운용의 ‘히어로-영웅시대주식’ 펀드는 범현대그룹 주식에 투자하는 전략을 쓴다. 현대건설·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현대제철 같은 종목을 1~2% 비중으로 갖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POSCO 등의 우량주 비중이 3~7%로 더 높다.

그룹주 펀드에 투자할 때 조심할 점은 일종의 ‘테마 펀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유행에 따라 수익률 변동성이 들쭉날쭉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삼성증권 자산배분전략팀 이유나 연구원은 “삼성그룹주 펀드만 해도 지금은 성적표가 좋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며 “업종별로 계열사마다 일이 달라도 기본적으론 태생이 같다. 독립적인 회사에 분산투자하는 것보다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맏형인 한국운용의 삼성그룹주 펀드가 나온 뒤 그룹주 펀드들은 가족이 아닌 다른 주식도 많이 편입했다. 그는 “성장형·가치형 펀드를 투자 바구니의 주력군으로 삼고 이를 보완하는 상품으로 그룹주 펀드를 써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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