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 일본인 납치 문제, 이번엔 실마리 찾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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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0면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는 마지막 관문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라고들 한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이미 북한의 핵 신고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긍정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의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반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막판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과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는 고비마다 불거졌다. 북·미 간 수교를 목표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2000년에도 그랬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와 북한의 일본 적군파 은닉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미국은 일본의 압력을 받아들여 그해 4월 25일 국무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이 문제의 해결을 중요한 조치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부 장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래리 닉시 『CRS 의회보고서). 물론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무산 등이 이후 북·미 협상 결렬의 계기였다. 하지만 일본의 납치 문제 제기도 2000년 말 한반도 정세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 정부는 KAL기 폭파 등 북한이 한국에 가한 테러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미국 측에 전했고, 이후에도 KAL기 폭파 사건이나 전쟁 중 민간인 납북(485명·2005 미 국무부 북한 테러 보고서에 명기됨)에 대해 북한의 사과나 해명을 공식 거론하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린 것은 1987년의 KAL기 폭파 사건이 근거였다.

부시 행정부 들어서도 일본의 압력은 계속돼 2004년 4월 미 국무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이유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 명기해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 이후 미국이 대북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1월 베를린 북·미 협의 이후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분리해 다루기 시작했다.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 행정부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테러지원국 해제 이슈와 연계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 시설 불능화 및 신고를 완료하는 대가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하자, 일본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저지에 총력 외교전을 펼쳤다. 일본은 6자회담 5개국이 분담하는 대북 에너지 지원도 납치 문제 미해결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북한 양측에 납치자 문제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일본 정부도 나름의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북·일 양측의 체면을 살릴 막판 해법이 도출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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