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88일 만에 사과했지만 가시적 쇄신안 빠져 정국 풀릴지 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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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수석들이 배석한 가운데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컴도저’라고 칭한 적이 있다.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란 의미다. 추진력이 강하다는 취지지만 일각에선 ‘여론에 신경 쓰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 이 대통령이 22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취임 88일 만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진지한 자기 성찰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바뀌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통합민주당에서도 “이 대통령의 자세가 쇠고기를 통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대통령의 변화를 지켜보겠다”(차영 대변인)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소통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20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만났다. 이면엔 역시 민주당 소속인 김원웅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이 여권에 야당 대표와 만날 것을 조언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중진 그룹인 김형오·이재오·홍준표 의원도 이 대통령과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한 사실이 있다. 이 대통령이 근래 불쑥 청와대 비서진에 “한나라당 낙천·낙선자 연락처 리스트를 달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에선 “직접 챙기고 민심을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도 비슷한 발언을 해 왔다. “정부가 국민과 완벽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13일 국무회의),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제 자신이 먼저 바뀌어 나가겠다”(15일 국가조찬기도회)는 등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선 ‘이 대통령이 변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통을 강조하는 건 방법론일 뿐 자신이 옳다는 걸 일로 보여주겠다는 기본 스타일은 그대로”(수도권 초선 의원)란 시선이 있다. 최근 국정 혼선을 새 정부로서 어쩔 수 없는 ‘성장통’ 쯤으로 여기거나, 결국 국민이 이해해 줄 것이란 낙관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적 쇄신에 대한 거부감이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입장,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시각을 그 예로 꼽는 사람이 많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서울 대중교통체계 개편 때 이 대통령은 옳다고 믿고 꼿꼿하게 버텼고, 결국 서울시민이 적응했다”며 “한반도 대운하든 물길 잇기든 반발이 있겠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면 국민이 수긍할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적 쇄신론을 두고도 이 대통령을 최근에 만난 한 인사는 “자주 바꾸지 않아야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란 CEO(최고경영자)적 인재관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또 이날 이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가시적인 쇄신 조치가 빠져 있어 정국이 제대로 풀릴지 미지수란 평가도 나온다.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당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도 여권 지도부의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일각에선 “민심을 보지 않고 엉뚱한 측면을 문제 삼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글=고정애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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