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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구원은 신의 재림안에서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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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소설가 박상륭씨가 신작 장편 『잡설품』 출간에 맞춰 잠깐 들어왔다. [사진=문학과지성사]

박상륭(67)이 장편소설 『잡설품(雜說品)』(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그는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설은 『죽음의 한 연구』를 완성하는 마지막 책으로 그 5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죽음의 한 연구』는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파헤친 작품으로, 일찍이 고(故)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 이후 최고의 소설”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작가는 『죽음의 한 연구』 5부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상의 공간 ‘유리’에서 펼쳐지는 40일간의 구도기 『죽음의 한 연구』(1975)가 삶과 죽음의 화두를 제시했다면, 모두 3부로 구성된 『칠조어론(七祖語論)』(1990∼94)은 고행에 관한 이야기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잡설품』은 해탈에 관한 작품이다.”

그 문학적·역사적 의의를 인정하더라도 소설은 난해하다. 이번에도 기독교·불교·라마교 등 온갖 종교 교리와 동서고금의 철학 담론이 수시로 인용된다. 게다가 불경에나 나옴직한 한자나 산스크리트어, 심지어 작가 자신이 창안한 어휘가 한쪽을 넘어가는 긴 호흡의 문장 안에 빽빽이 들어차 있다. 그를 둘러싼 세간의 평을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먼저 밝히고 나섰다.

“선의의 편에서는 ‘난해하다, 난삽하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평도 혹간 찬사일 수 있다는 것도 부인되지는 않지만, 그 결과에 있어 투정부리기는, 작가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하여, 종내는 무조건 그 작가의 작품을 기피하게 하는, 작가에 대해 매우 손해나는 찬사였음이 드러난다.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기피증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세상엔 두 종류의 잡설(雜說)이 있는데 하나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다른 하나가 내 작업”이라고 니체와 자신을 비교했다. ‘잡설’은 박상륭이 자신의 소설을 일컫는 말. 근대적 의미, 즉 서구적 의미의 소설 양식으로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이야기를 펼쳐보일 수 없다는 강단이 서린 용어다.

“니체가 전한 신의 부음 이후 세상은 황폐해졌다. 신의 죽음은 곧 인간의 죽음을 불렀고, 그것을 우리는 물질주의 세계라 이른다. 물질이 줄 수 있는 행복은 그 물질만큼이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론 살지 못한다. 이때 ‘인간의 재림’이 필요해진다. 그러면 인간의 재림은 어떻게 가능한가. 간단하다. 진정한 의미의 신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내가 이 소설에서 말하려는 바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 칼럼에서 작가에게 “아무리 쇠귀에 경 읽기라 해도 고토의 중생들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 하산하길 바란다”고 청한 게 집필 계기가 됐다고 그는 소개했다. 아직도 눈 맑은 노 비평가의 말마따나 중생은 예나 지금이나 무지하다. 반면에 박상륭을 경전으로 떠받드는 신도들의 신앙심 또한 여전하다. 아니 요즘엔 그 밀교도(密敎徒)의 세력이 불어난 듯싶다. 차창룡·함성호·이문재 등 기존의 시인 신도 말고도 박민규·김종광 등 젊은 소설가도 최근 간증 대열에 동참했다.

박상륭은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간호사인 아내를 따라나선 노력 이민이었다. 그는 캐나다의 한 병원 시체보관실 바닥을 닦으며 40년 세월을 견뎠고, 한국 현대소설 사상 가장 형이상학적 탐구라는 『죽음의 한 연구』 작업을 마침내 갈무리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비장한 표정이 문득 얼굴을 스친다.

“마지막 이민길 가는 기분입니다요. 즐겁게 죽는 연습이나 해야겠습니다요.”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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