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 카다피의 변화를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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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5일 정상회담을 열고 "대(對)테러전쟁의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임을 선언했다. 얼마 전까지 불량국가 리스트에 올라있던 리비아가 대테러전쟁에 미국.영국과 함께할 것임을 밝힌 이번 선언은 9.11테러 이후 반(反) 테러리즘의 분위기 속에서 실리와 공존이 새로운 외교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국제정치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리비아는 그동안 팬암기 폭파 테러범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고 아일랜드공화군(IRA)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각종 국제테러에 연관된 의혹을 받아 왔다. 또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대립과 투쟁의 외교정책을 펼쳐 왔다. 이런 리비아의 행동은 북아프리카의 존경받는 강국이자 부국을 건설하겠다는 카다피의 꿈과는 정반대로 리비아의 고립과 리비아 국민의 고통만 가중시켰다.

이런 리비아가 태도를 바꾼 것은 9.11테러 이후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전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에 저항할 경우 사담 후세인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선언하고 과거의 테러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죄, 배상을 약속함으로써 한때 서방세계, 특히 영국에 '악의 화신'처럼 알려졌던 카다피는 서방과 새로운 우호적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리비아의 이런 모습은 핵을 체제 안전의 보루로 생각하면서 국제사회와 대립하고 있는 북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은 9.11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반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불용의 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결단을 해야만 한다. 인민은 굶주리는데 국방비를 증액하고, 서구의 수백분의 1도 안 되는 핵전력을 가지고 국제사회에 대항해서는 결코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제사회가 아직 대화와 타협의 의지를 갖고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카다피도 하는데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