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했지만 합의는 ‘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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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과거 대통령과 야당 총재(대표) 간의 회동은 ‘영수회담’이라 불렸다. 여당 총재를 겸했던 대통령과 야당 최고 지도자의 만남은 정치 현안을 놓고 여야 의견이 극한적으로 대립할 때 의견을 조율하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새 정부 들어 처음인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의 20일 청와대 회담에선 그러나 합의 사항이 없었다. 두 사람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2시간 동안 얼굴을 맞댔지만 견해 차이만을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FTA 비준 문제가 17대 국회에서 일어난 만큼 17대 의원 임기 중에 마무리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협조를 당부했다. 손 대표는 “쇠고기 협상 때문에 FTA 문제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 ”이라며 외면했다.

이날 영수회담은 사실상 FTA 회담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손 대표가 회담에서 보일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그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당내 강경파를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쇠고기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만 해도 손 대표는 17대 국회 임기 내에 FTA 문제를 마무리하는 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분위기는 ‘공세 일변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4·9 총선 때 수도권의 참패로 농촌지역 의원들의 비중이 커진 데다,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 주자들 간의 ‘선명성 경쟁’도 불붙고 있다. 새 정권 출범 후 첫 선거인 6·4 재보궐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소신을 고집하기 힘든 상황에서 손 대표는 FTA 문제를 쇠고기 재협상과 연계시켜 버린 셈이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여여(與與) 영수회담으로까지 불린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지난 10일 만남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반성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사흘 연속 ‘소통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런 만큼 FTA 비준을 향한 기대감도 높았었다. 그러나 회담은 평행선을 그었고, FTA 비준안 처리는 사실상 18대 국회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대화의 물꼬를 터 ‘소통 채널’을 넓혔다는 것 외엔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만남이었다.

최상연·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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