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비자금 파문-YS의중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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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가운데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6공청산 의지의 수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미 사태는 제어할 수 없는 가속이 붙어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검찰의 수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진상규명과 노 전대통령 처리방향은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그것이 현실의 논리다.
캐나다와 유엔을 순방하고 있는 김대통령의 관심도 이미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문제에 쏠려 있다.국내문제로 신경쓴 탓인지 김대통령의 모습은 몹시 피곤해 보인다.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김대통령도 24일에는 공식수행원과의 만찬도 취소했다.수행하는 수석비서관들도 온통 국내문제에 신경이곤두서 있다.뚜렷한 해결책은 없고 그렇다고 방관자처럼 구경만 하기에는 워낙 인화성이 강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내용을 철저히 밝히는 쪽으로방향을 잡은 듯하다.적당한 수준에서 덮어두려 하다가는 한번 맞을 매를 두번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6공과의 완전한 단절도 쉽지 않다.3당합당이란 정계개편의 수단을 통해 집권한 탓에 아무리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도국민들의 의혹을 지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5,6공에 뿌리를 둔민정계를 다수로 하는 민자당을 통치기반으로 하 고 있는 현실도무시할 수 없다.비자금 수사결과와 노 전대통령 처리문제는 자칫부메랑효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지금 김대통령의 머리 속은 수습수순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 전대통 령 처리방향이다.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행하는 측근들의 의견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노 전대통령을 구속 또는 감옥에 보낼수 없다는 것은 대개 일치한다.전직대통령이 통치자금으로 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을 퇴임후까지 수백억원 가져갔다는 대목만 본다면 당연히 사법처리해야 한다.그러나 현재의 국민감정은 구속하라는 쪽이 우세하겠지만 막상 사법처리하게 되면 김대통령의 도덕성이 돋보이기 보다는 정치적 신의문제까지 들먹여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될 수도 있다.또 전직대통령을 사법처리하는 것은 헌정사에 좋지 않은 관례를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노 전대통령이 비자금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낙향하는 수준이면 가장 무난하지만 국민들이 납득할지 의문이다.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외국에 보낼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노 전대통령이 수락할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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