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이 아닌 진짜 물건 보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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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左>가 19일 서울 당산동 당사를 방문한 청와대 박재완 정무수석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 간 영수회담에서 여야는 진짜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19일 오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협의하기 위해 야당 대표와의 회동을 건의할 때만 해도 민주당은 “쇠고기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회동을 일축했다. 청와대가 FTA 무대에 야당을 들러리로 삼으려는 데 말려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이 당사로 손 대표를 찾아가서 “FTA 문제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한 어떠한 의제도 좋다”고 제안하자 실타래가 풀렸다. 손 대표는 즉석에서 “그렇다면 야당 대표로서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20일 회동에서 이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FTA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17대 국회 임기 내 FTA 비준안을 처리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쇠고기 재협상 없이 한·미 FTA 비준을 생각하지 말라”(차영 대변인)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날 손 대표는 박 수석에게 “소통이란 게 포장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물건(쇠고기 재협상)을 보여 달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박 수석은 광우?발생 시 검역 주권 명문화 등 한·미 간에 진전된 추가 협의내용을 손 대표에게 설명했다.

손 대표 측은 그 정도론 국민을 설득할 수 없으며 전면적 재협상 선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차 대변인은 “국민이 만족할 만하게 재협상이 완료됐을 때 한·미 FTA 협상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손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밀어붙이기 식 국정운영을 중단하고, BBK 고소·고발 건을 해결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자유선진당 쪽 반응은 더욱 냉랭하다. 박 수석은 이날 이회창 총재에게도 찾아가 FTA 문제 해결에 도움을 부탁했지만 이 총재는 “정부가 본협정문은 손대지 않고 별도 문서를 작성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무역 마찰 소지만 더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 수석은 이 총재도 곧 청와대로 초청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이 총재 측은 “민주당 대표만 야당 대표로 대접하는 판에 청와대는 뭐하러 가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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