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트먼 감독 "숏컷" 비디오 출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올봄 국내에 개봉됐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못한채 묻혀버린 로버트 올트먼(70)감독의 걸작『숏컷』이 다음달 9일 비디오로 출시된다.올트먼은 『플레이어』『패션쇼』등 잇따른 화제작으로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숏컷』은 올트먼이 직접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하고 팀 로빈스.앤디 맥도웰.매들린 스토.잭 레먼등 호화배역진을 동원해 만든 영화로 9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숏컷』은 그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국내흥행에는 참패했다.개봉관으로는 서울 강남의 힐탑시네마 한군데서 개봉된데다 그나마 불과 2주만에 막을 내려버린 것.
『숏컷』이 국내흥행에 참패한 이유는 내용이 너무나 미국적인데다 구성이 치밀해 긴장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만큼 군더더기 없이 만들어진 영화다. 『숏컷』은 현대 미국인의 미세한 삶의 결을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 드러낸 작품.특정 주인공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저마다 전형성을 갖고 극의 무게중심을 나눠 갖는 점이 특징이다.방송국의 하워드 피나간은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앵커맨으로 자수성가해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그러나 그의 아들 역시 부모의 바쁜 생활 때문에 부모 동행으로 건너야 하는 건널목을 혼자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피나간의 아들을 친 도린은 중년의 웨이트리스다.그는 주정뱅이 캐딜락 운전사와 함께 살지만 남편의 술주정 때문에 괴롭다.진은 순찰경관으로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헬리콥터 조종사인 스토미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다.진의 아내는 남편의 바람기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화가인 언니를 찾아가 누 드 모델을 한다.그의 언니도 남편인 의사 랄프와 다툰다.3년전에 자신의 그림을 산 미술컬렉터와 카섹스를 한 사실을 남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숏컷』의 전개방식은 이런 식이다.부부.부모.연인등 10여건의 관계들이 각기 다른 독립된 삽화로 전개되면서도 어떤식으로든연관된다.마치 단편영화 10여편을 그물망처럼 엮어 놓은 듯하다.올트먼은 그 안에서 미국인의 사랑과 증오,분노 와 평화,용기와 음모등 다양하게 변주되는 삶의 양상들을 보여준다.세밀한 일상사를 통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보여 주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한마디로 오늘날 미국에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전해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