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를 잡아라!<2> 한국관광고 & 한국조리과학고

중앙일보

입력

전문계 특성화고가 뜨고 있다. “실업계 고교가 이름만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면 시대착오적이다. 대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가는 곳이 결코 아니다. 대학입시에 유리하다고 알려지면서 관심이 쏠려 오히려 입학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러나 ‘끼’가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특성화고를 찾아 학교의 특징, 전형방식, 진학실적 등을 알아본다.

[ 한/국/관/광/고 ]

호텔리어를 꿈꾼다면 관광고를 추천한다. 현재 관광 관련 특성화고는 전국적으로 9곳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 관광통역분야를 특화시켜 해외유학연계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관광고(교장 김성렬)를 찾았다.


유학연계시스템이란
  한국관광고(이하 관광고)는 현재 중국 심양사범대학, 영국의 런던호텔스쿨, 미국의 TUI(Travel University International) 등 7개국 10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통해 학생들의 유학을 돕고 있다. 특히 TUI를 제외한 9개 학교는 출신학교장의 추천이 입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관광고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79명의 졸업생 가운데 해외 유학생이 총 19명으로 전체의 24%에 이르고 있다.
  김성렬(81) 교장은 “중국의 청화대 등 지속적으로 해외 대학과 결연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아직 한국의 관광 산업이 걸음마 수준이라서 외국의 시스템을 공부하는 게 자신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는 학교로는 말레이시아의 Taylor’s College로 2003년부터 총 19명의 관광고 졸업생이 진학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관광고 출신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 혜택까지 들고 나섰다. 올해 심양사범대는 관광고 학생 4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또 대련외국어 대학은 관광고 졸업생에 한해 곧바로 2학년으로 입학허가를 내준다.
  심양사범대 중국어과에 합격한 인효심(19)양은 “여행과 언어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학을 다녀올 수 있게 많이 도와준 관광고에 감사하다”며 “특히 대학교 입학 때 교장선생님의 추천서와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어떤 공부를 하나
  지난 2000년 개교한 한국관광고는 관광영어·중국어·일본어통역과를 운영하고 있다. 한 학년 당 과별로 30명씩 총 90명의 학생을 선발하며 어학을 기본으로 호텔 및 관광 실무 학습이 이뤄진다.
  1등급 기준으로 토플 220점(CBT기준), HSK(중국한어수평고시) 6급, JLPT(일본어능력시험) 2급 등 졸업인증제를 도입해 외국어 학습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전문계 특성화고에 걸맞게 현장 실무교육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서울밀레니엄힐튼호텔과 경주 힐튼호텔, 세중 투어몰, AHLA(American Hotel & Lodging Association, 미국호텔협회) 등과 산학협력 협약을 맺어 실무교육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학년별로 3회씩 힐튼호텔과 제주 롯데호텔 서비스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또 국내 고교로서는 유일하게 AHLA 수료 과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학생선발은 내신 성적 위주로
  학생전원 기숙학교인 관광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합격자 평균 내신 성적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 평균 내신 성적이 20%를 상회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교과(240점), 출석(5점), 봉사(10) 성적 등 255점의 내신 성적과 면접 30점, 가산점 15점을 모두 합쳐 300점 만점으로 선발한다. 교과 성적은 3학년 1학기까지 국어, 영어, 수학 성적만 각 80점씩 반영한다.
  중국어통역과 3학년 김규리양은 “기본 성적은 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면접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며 “관광고를 지망한 이유와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성격이 밝은 아이들이 많이 뽑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국/조/리/과/학/고 ]

세계 최고의 마스터셰프(master chefs)를 꿈꾼다면 이곳의 문을 두드려라. 졸업생 전원이 4개 이상의 조리자격증을 보유하는 것으로 유명한 경기도 시흥의 한국조리과학고(교장 진태홍)를 찾았다.


4년제 대학 진학실적 발군
  전문계 특성화고는 4년제 대학 진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특기자 전형이나 관련분야 정원 외 선발 전형에서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조리과학고(이하 조리고)도 올해 졸업생 244명 중 104명이 수도권 주요 대학에 진학했다. 이 가운데 관광요식업 관련 최고학부로 정평있는 경희대에 19명을 비롯해 세종대 10명·경기대 9명이 포함돼 있어 관련분야 진학률도 최고수준이다.
  김성호 교감은 “사회 현실상 내신성적 상위 15%정도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여기서 배운 조리기술이 다양한 학문과 접목됐을 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는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이 학교 졸업생 중 상당수가 상경계열로 진학해 요식업 경영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에 나서는 학생도 적지 않다. 올해도 졸업하자마자 24명이 조리모를 썼다. 임금 또한 150만 원 이상으로 고교 졸업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다. 실습으로 다져진 현장경험을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는 일반 인문계 고교에서 전학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원칙적으로 결원이 생기면 2학년 1학기까지는 이 학교로의 전학이 가능하다.
 
현장실습으로 조리경험 풍부
  국내 요리산업의 세계화가 힘든 것은 체계적인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도제 형식으로 이뤄져 왔던 기술 전수가 세계화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 ‘요리도 과학’이라는 조리고의 슬로건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진로연구부장 허훈(45) 교사는 “예전에는 천하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요즘은 사회 고위층 자녀가 이 학교에 입학하고 있다”며 “그만큼 인식이 좋아졌고 좋은 학생들을 토대로 체계적인 교육을 이어간다면 한국음식의 세계화는 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조리고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현장 실습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롯데(이병우), 메리어트(홍영표), 신라(서상호), 인터콘티넨탈(김보성) 등 특급호텔 조리장 40명이 현장지도교사 명단에 올라있다. 매년 11월말에서 12월말까지 한 달여 동안 각 호텔에 분산돼 현장교육이 실시된다.
  실습위주의 학제 편성은 자연스레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진다. 한식·일식·중식·양식·제과·제빵 등 6개 분야의 조리기능사 자격증은 그야말로 졸업장이나 다름없다. 3학년이 되면 수능공부를 위한 특별반이 편성돼 대학진학에도 만전을 기한다.

내신 15%의 상위권 학생 입학
  뛰어난 대학 진학실적이 알려지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내신성적 11~20% 대의 학생이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 올해는 이 성적대의 학생이 95명으로 전체의 39.5%를 차지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경기권 학생이 71.4%를 차지해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도권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신성적은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기가(기술·가정) 등 6과목이 해당되며 면접(30점), 목적의식 평가(30점), 적성검사(20점)가 중요한 평가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술의 전수가 중요한 분야인 만큼 가업을 잇는 학생에게 10점의 가산점이 부여된다.
  허 교사는 “조리과학고는 단순한 조리인을 양성하는 학교가 아니다”며 “조리 경영인을 키워내는 조리사관학교인 만큼 그에 걸맞은 포부를 지닌 학생이 지원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