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참관단, 대동강맥주·평양건재 공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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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동대원구역 송신동에 위치한 대동강 맥주 공장에서 근로자가 16일 생산된 병맥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평양 시내 주요 거리에선 ‘대동강맥주집’이라는 간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생맥주 체인점이다. 이곳에 맥주를 공급하는 ‘대동강맥주’는 중심가인 인민문화궁전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평양특별시 동대원 구역 송신동에 자리해 있다.

본지가 주관하고 KT·우리은행·LG경제연구원·포스코·STX·현대경제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기업·연구소 관계자, 북한 전문가, 본지 기자 등이 참여하는 25명의 참관단(단장 김수길 중앙일보 편집인)이 16일 이 공장을 찾았다.

공장의 핵심 공정 시설인 500평 남짓한 ‘병 포장 작업반’에선 10여 명의 근로자가 ‘자동흐름선(컨베이어 벨트)’에서 병 살균기, 맥주 주입기를 거친 빈 맥주병에 라벨이 붙어 나가는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공장의 변영호 지배인은 “우리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맥주에 비해 높지만 맛은 오히려 더 산뜻하다”며 “남측 맥주도 마셔봤는데 역시 우리 맥주가 더 수준이 있다”고 자랑했다. 8만 평 부지에 자리 잡은 이 공장 700여 명 근로자가 생산하는 양은 하루에 병맥주 20∼50t, 생맥주 170t 등 200t 안팎이다. 변 지배인은 “지난해 호주의 한 인사가 우리 맥주를 수입해 남측에 들여보내 팔다가 올해는 중단됐다고 한다”며 아쉬워했다.

이곳은 연초 북측이 신년 사설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인민생활 제일주의’의 대표적인 생산 시설이다. 공장 입구엔 ‘맥주의 질을 최상의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해 현장에서 침식한 기술자 전투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는 벽보가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교육을 강조하는 ‘지식은 광명이고 무식은 암흑이다’라는 표어도 선명하다.

평양시 역포 구역 소심동의 평양건재공장에선 최근 기기를 ‘만가동(풀가동)’ 중이다. 평양이란 도시를 현대화하겠다는 방침에 맞춰 건물 재단장에 필요한 유리창 틀, 외벽용 석재, 타일을 생산하고 있다. 2003년에 조업을 시작한 이 공장의 고영호 기사장은 “제품의 질을 높여 해외에도 수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공장은 경공업을 발전시키고 생필품·소비품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북측이 주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참관단의 김연철 고려대 교수는 “북측의 신년 공동사설을 분석해 보면 경공업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측의 경공업 발전에 남측이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만큼 남북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남북 관계의 또 다른 변수로 북·미 관계의 개선 조짐을 꼽았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은 “북·미 관계가 개선된다면 정치·군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북측의 대외경제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남북 관계도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측에선 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평양 만경대엔 이날도 오전부터 북측 주민들이 몰렸다. 두 명씩 손을 잡은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생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평양 시내 삼흥소학교의 3학년 학생(9세)들이 여성 안내원에게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만경대 관계자는 “전날엔 북측 전역의 주민들과 독일·중국 등 11개국 해외 인사들을 포함해 4만6000여 명이 만경대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남북 관계가 급반전할 가능성엔 의문을 나타냈다. 참관단이 만난 한 북측 인사는 “남측의 ‘실용주의’나 ‘비핵·개방 3000’은 지난 남북 관계의 발전을 모두 무시하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긍정론도 적지 않다. 참관단의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측은 경제적 지원에서 언제까지 남측을 거부할 수 없고, 남측 역시 남북 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는 만큼 단기적으론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장기적으론 발전되고 확대되는 추세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창현 국민대 교수도 “남북은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는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길 단장 등 참관단 17명은 17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고려항공편으로 중국 베이징을 거쳐 귀국했다. 강영진 본지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등 남은 참관단 8명은 20일까지 평양에 머물며 북한의 경공업 시설 등을 돌아본다.

글=특별취재단,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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