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죠. 하루에 1457억원이라니. 6개월간 5000억원이 목표였는데….”
노희성 기업은행 기업금융부장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소기업인의 날인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한 이 은행의 ‘중소기업희망통장’은 시판 첫날인 14일에만 611계좌에 1457억원을 끌어모았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은 “이 대통령이 먼저 통장을 만들자 이게 어려운 중소기업을 돕자는 분위기로 이어졌다”며 “효과적인 감성 마케팅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4월 기업은행의 ‘우수기업 채용박람회’에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노 부장은 박람회 결과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면서 송종호 중소기업수석비서관에게 중소기업희망통장의 취지를 설명했다. 통장에 쌓인 돈을 6%라는 낮은 금리로 혁신형 중소기업을 돕는 재원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이를 송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통령의 ‘1호 가입’이 이뤄졌다. 시판 이후 삼성·GS·포스코 등 대기업은 물론 개인 예치액도 100억원을 넘어섰다. 현병택 기업은행 부행장은 “반응이 워낙 좋아 연내 목표를 1조5000억원으로 높였다”고 말했다.
금융상품 마케팅에서 대통령은 대박을 부르는 ‘큰손’이다. 특히 공익성 상품의 경우 그렇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2월 기업은행의 녹색환경신탁에 가입했다. 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 이어 94년 낙동강에서 벤젠과 톨루엔 등이 검출돼 온 국민이 ‘식수 패닉’에 빠진 직후였다. 이 상품은 운용 수익의 1%를 환경기부금으로 공제하는 동시에 그 두 배를 은행이 부담해 기부하도록 설계됐다.
같은 해 4월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대구은행의 ‘낙동강 사랑신탁’에 가입했다. 낙동강에 초점을 둔 신탁으로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 등 저명인사들도 잇따라 가입했다. 이 상품은 출시 후 6개월 만에 718억원을 모았다. 이용한 대구은행 부부장은 “당시 기부금 총액만 4억원이 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특판 상품인데도 98년까지 ‘장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8년 옛 한일은행의 ‘IMF 경제회생수출지원통장’에 가입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벌인 ‘IMF 경제위기 조기 극복 3000만 저축운동’을 계기로 나온 ‘IMF 통장’은 외환위기로 고통 받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재원 마련이 목적이었다.
98년 4~9월 한시 판매된 이 상품엔 2조6000억원의 돈이 몰렸다. 김기림 우리은행 홍보실 부부장은 “6개월 만에 2조6000억원을 달성한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라며 “당시 경제위기 상황과 함께 대통령의 가입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도 98년 5월 신한은행의 ‘나라 살리는 통장’에 가입했다. 45개 여성단체가 주관하는 ‘나라 살리는 통장 갖기 범국민 운동’의 일환으로 개설된 이 통장은 가족 1인당 1만원 이상 2년간 가입하는 정기예금이다.
세후 이자의 1%를 은행 부담으로 실업자·불우이웃 돕기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한 이 통장은 출시 3개월 만에 500억원을 돌파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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