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히스패닉과 백인 노동자가 당락 가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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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08면

8일 오바마 후보가 울프 블리처 진행의 CNN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하마스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매케인 후보가 말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매케인이 실망스럽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AP=연합뉴스

11월 4일 치러질 미국 대선은 ‘메시아’와 ‘영웅’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민주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버락 오바마는 지지자들에게 ‘미국을 구원할 메시아’로 통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전쟁 영웅’이다.

‘메시아’ 오바마냐, ‘영웅’ 매케인이냐

오바마와 매케인이 예상을 깨고 경선 초기 선두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루돌프 줄리아니를 물리친 이유는 “미국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 반영하듯 뉴스위크 최근호(12일자)는 ‘포스트아메리칸 세계(The Post-American World)’를,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5∼6월호는 ‘미국의 시대는 끝났는가’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앞으로 전개될 선거전에서 공화당은 오바마가 ‘거짓 메시아’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매케인이 전쟁 영웅일지는 모르나 미국을 위기에서 구출할 영웅은 아니라고 공격해야 한다. 민주·공화 양당은 힐러리가 사퇴하자마자 내보낼 TV 광고를 준비해 놓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오바마가 경험 부족으로 군 최고통수권자가 되기에 무리라는 내용의 광고에 1950만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2000, 2004년 대선은 미국을 진보·보수로 양분하는 상처를 남겼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내 우파와 공화당 내 좌파는 설 땅을 잃었다. 이번 대선에서 뛸 오바마·매케인은 모두 중도 성향이다. 무당파 유권자에게 매력적인 자질을 구비했다.

오바마는 요즘 매케인에게 지지율에서 4~5%포인트 앞서고 있다. 대선 투표일에 유권자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35명, 주지사 11명, 하원의원 435명을 뽑아야 한다. 지금까지 판세로는 민주당이 하원에서 5~10석, 상원에서 3~6석을 더 늘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민주·공화당의 전형적인 색깔에 걸맞은 후보는 아니다. 선거전에서도 이례적인 양상이 표출될 전망이다. 흑백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이 점화될 수 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집토끼(기존 지지층)’를 지키고 ‘산토끼(무당파·부동층)’와 ‘남의 집토끼(다른 당 지지층)’를 유인해야 한다. 현재 오바마와 매케인은 각자 가진 ‘집토끼’의 사수가 의문시되는 가운데 ‘남의 집토끼’를 노리는 형국이다.

오바마는 흑인과 젊은 층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매케인이 파고들 여지가 별로 없는 민주당의 ‘집토끼’다. 그러나 매케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히스패닉계 유권자, 유대계 유권자, ‘저학력 백인 남성 노동자’를 넘보고 있다. 히스패닉계와 흑인의 갈등은 뿌리 깊다. 히스패닉계는 백인보다 흑인을 싫어하는 정도가 더 심하다고 알려졌다. 히스패닉계의 표는 남서부(콜로라도·네바다·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에서 승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진보 성향이 강한 유대계 유권자도 민주당 표밭이다. 2주 전 발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61% 대 32%로 매케인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오바마가 대선 승리 뒤 이란과 하마스(팔레스타인 과격 무장세력)에 대해 유화정책을 펼칠 경우 이스라엘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음을 부각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무당파 못지않게 당락을 결정할 유권자 집단은 저학력·백인·남성 노동자다. 매케인의 선거전략 고문인 찰리 블랙은 “민주당 지지 성향의 노동자 표 20%를 가져오면 매케인이 이긴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힐러리 지지자 중 30%는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매케인을 찍겠다’고 벼른다. 오바마가 집안 단속을 하려면 반드시 힐러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약 힐러리가 러닝메이트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오바마는 이를 거절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14일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 자리에 바싹 다가섰다. 그러나 힐러리는 여전히 이번 대선의 큰 변수다.

매케인도 ‘집토끼’ 문제가 있다. 골수 공화당원은 그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매케인은 당론과 다른 돌출행동 때문에 공화당 지도부에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방송인 러시 림보는 “매케인은 배신자다. 그가 후보가 되면 공화당은 망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부시는 매케인에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대상이다. 매케인은 경선 과정에서 부시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가 ‘후보가 되려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오바마 진영은 매케인을 ‘맥부시(McBush)’라고 부르며 “매케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부시의 집권 연장을 의미한다”고 공격했다. 매케인의 경제정책이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부시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매케인은 부시를 멀리하기도 어렵다. 최근 매케인은 부시와의 차별화를 위해 온실가스 규제 강화 정책을 발표했다. 골수 공화당원은 “매케인이 이제 앨 고어처럼 됐다”고 비아냥거렸다. 부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35%를 매케인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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