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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디카족 … 사진속 역사를 느껴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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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주제전 ‘그때와 지금, 내일의 기억’에 출품될 한국작가 윤리의 ‘Sleeping Woman10’(2005). [대구사진비엔날레 사무국 제공]

올 10월 열리는 2008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진용이 막강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김희중(68·에드워드 김) 조직위원장, ‘만드는 사진’의 원조 구본창(55·사진左) 전시감독 덕분이다. 한국 사진계의 두 거목이 추구해 온 세계는 달랐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원을 그리던 두 사람이 이번에 만난 것이다. ‘모두가 즐기는 사진, 다함께 돌아보는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말이다. 국내 첫 사진 전문 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위해 한마음이 되어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모두를 위한 ‘매직 박스’=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첫 유색인종 편집장, 73년 서방기자 최초로 북한 취재. 김희중 위원장의 이력은 사진을 평생의 뜨거운 업으로 삼았다는 증명이다. 그러나 그에게 사진의 첫 추억은 아랫목처럼 안온하다.

“이건 사진만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바로 ‘매직 박스’다. 이게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알아내라.”

1953년 여름, 중학교 2학년 김희중에게 아버지는 독일제 카메라 롤라이코드를 꺼내놓고 말했다. 하동관 창업자인 부친이 매일매일 곰탕을 팔 동안 김희중은 을지로 골목을 누비며 누나, 동생, 젖먹이는 새댁 등을 찍었다.

“사진기를 갖고 다니면 좋은 사진을 찍어야 했고, 그러려면 사물을 두 번 세 번 거듭 보게 됩니다. 사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선친의 55년 전 화두에 칠순을 앞둔 김 위원장이 내놓은 해답이다. 전장의 병사처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살았던 다큐 사진가는 또박또박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래서다. 전 세계 안 가본 데 없고, 대통령·기업총수 등 안 만나본 사람 없이 모험 가득한 삶을 산 그가 지방에 내려간 이유는.

“전 국민이 사진가인 시대에요. 사진 비엔날레도 사진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모두가 즐기는 행사가 돼야 해요. 사진은 ‘매직 박스’, 일상에 애착을 갖게 해 주니까요.”

◇지금 여기와 역사=그렇다면 모두를 위한 사진 비엔날레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해답은 구본창 전시감독이 쥐고 있다.

전시는 신진과 시간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내건 주제가 ‘그때와 지금, 내일의 기억’이라는 모순형용이다. “지금 찍는 모든 것들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요. 그게 바로 사진의 속성이죠. 21세기에 활약하는 젊은 작가들의 미래적 작업 또한 ‘내일의 기억’이 될 겁니다.”

한국, 중국과 대만, 일본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이 주제전과 함께 역사사진전인 ‘동북아시아 100년전’도 마련했다. 스위스의 헤르초그 뮤지움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의 옛 사진들을 발굴 전시한다. 옛날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담담하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쌓아왔으며, 어디 서 있는지지”를.

전시감독으로서의 행보는 그간 추구한 사진 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인체를 부분부분 찍은 사진을 재봉틀로 박아 이은 ‘태초에’(1991) 등 그는 한국 사진계에서 ‘만드는 사진’의 원조다. 기록에서 내면 표현으로, 순수 예술로서 사진의 경지를 높였다. 지난해말 지방 첫 사진전문미술관인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개관전엔 뽀얀 백자, 녹아가는 비누 사진을 걸었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시간이 그려낸 역사다. 한편으로 그는 독일서 사진 공부를 하고 귀국한 후 88년 워커힐미술관서 ‘사진 새 시좌(視座)’전을 꾸리는 등 새로운 이들의 새로운 사진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구본창 전시감독은 “여러 사람들이 사진 이미지를 보고 생활이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디카족, 사진 콜렉터의 시대라 더욱 사진을 역사적 맥락에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두 거장의 ‘뷰파인더’에 어떤 영상이 투사될 지, 이번 비엔날레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김희중=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57년 경기고 재학 중 개인 사진전을 열었다. 미국으로 유학가 65년 텍사스주립대 신문학과를 졸업했고, 67년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했다. 85년 귀국했으며 2003년부터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구본창=1953년 서울서 태어나 75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학,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에서 사진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함부르크 국제미술아카데미 초청교수(92·2004), 런던 세인트 마틴스쿨 초청교수(99),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전공 교수(99∼2001년)를 지내며 전시 및 저술을 하고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
10개국 작가 200여명 참여
‘그때와 지금, 내일의 기억’주제

‘동북아시아 100년전’에 나오는 스위스 헤르초그 재단 소장의 ‘태형’(1870∼75) . [대구사진비엔날레 사무국 제공]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16일, 대구에 가면 사진의 모든 것이 있다. 제2회 대구 사진비엔날레다.

‘그때와 지금, 내일의 기억’을 주제로 한 메인 전시와 ‘동북아시아 100년전’‘숨겨진 4인’‘변해가는 북한의 풍경’‘공간유영’ 등 특별전을 대구 엑스코(EXCO)와 문화예술회관, 봉산문화회관 등 대구 곳곳에서 열린다. 한·중·일을 중심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총 10개국 작가 200여명이 참여해 1000여점의 사진을 내놓는다. 동아시아 3국의 과거와 현재 사진을 조명하는 게 전시의 초점이다. 또한 비엔날레를 계기로 ‘애퍼처(Aperture)’‘이마주’ 등 세계적 사진 전문지 편집장 등을 초대한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를 열어 한국 사진가들의 해외 진출 교두보도 마련할 계획이다. 053-601-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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