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째 스승의 날 은사 찾는 여섯 여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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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기도 군포시의 스승 집을 찾은 6명의 여교사들이 스승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뒤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황경원·김진경 교사, 강경화 교감, 조경옥 장학사, 남궁순형·정용애 교사, 강경호 교수, 조성도·조문제 전 교수. [사진=김형수 기자]

“교수님, 염색하시면 옛 모습 그대로이실 텐데요.”(행당초 황경원 교사)

“세월은 어쩔 수 없지, 너도 눈가에 주름이 부쩍 늘었구나. 허허허.”(조성도 전 서울교대 교수)

12일 오후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사제 간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89년 서울교대 영어교육과를 정년 퇴임한 조성도(84) 전 교수의 집에 중년의 여성 제자 6명이 찾아온 것이다. 서울교대 스승인 조문제 전 교수(85·국어교육과 퇴임)와 국어교육과 강경호(60) 교수도 제자들을 맞았다. 모두 백발이 성성했다.

제자들은 교사·교감·장학사로 일하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81학번들. 행당초등학교 황경원 교사(48)가 두 살 많은 맏언니이고, 5명은 62년생 범띠 동갑내기다. 매헌초등학교 강경화 교감, 대치초등학교 김진경 교사, 창림초등학교 남궁순형 교사, 개화초등학교 정용애 교사, 남부교육청 조경옥 장학사다.

제자들은 세 스승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정성스러운 선물을 건네며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그러자 조문제 전 교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반성하곤 했지. 내가 과연 노래를 들을 만한지 말이야”라고 말했다. 조성도 전 교수는 “내 눈에는 제자들이 아직도 20대로 보이고 예나 지금이나 딸 같다”며 껄껄 웃었다.

스승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교사가 돼라”고 당부했다. 제자들은 “학창시절부터 강조하신 말씀을 꼭 실천하겠다”며 스승의 손을 꼭 잡았다. 제자들은 20여 년 전의 여대생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너무 멋있었다”며 재롱을 부렸다.

여제자 6명의 스승 사랑은 유별나다. 85년 졸업 이후 24년간 한 해도 빠짐 없이 스승을 찾아왔다.

남궁순영 교사는 “조성도 교수님은 영어를 잘 못 하는 나에게 항상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내가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칭찬해 보니 그 효과가 정말 좋았다”며 “교사의 길을 알려주셔서 매년 찾아뵌다”고 답했다.

이들의 인연은 제자들이 3학년이던 83년 맺어졌다. 5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연락이 끊긴 장선혜(46)씨를 포함해 7명 모두 성씨가 달라 ‘칠각성(七各姓)’이란 이름의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그해 여름 스승들과 지역 속담과 방언을 연구하는 3박4일짜리 답사 여행을 전남 보길도로 떠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 설날엔 제자 7명이 한복을 차려 입고 교수들의 집으로 세배를 하러 갔다. 이때부터 매년 새해와 스승의 날에 은사를 찾아갔다. 스승의 날엔 주로 모교인 서울교대 주변에서 모였으나 올해는 조성도 전 교수 집에서 모였다. 그가 다리 골절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요즘 나라에서 영어, 영어 하는데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느냐”고 걱정했다. 그러자 조경옥 장학사는 “교수님처럼 저희도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며 “안심하셔도 된다”고 답했다.

강경화 교감은 “교수님들께서는 항상 ‘선생은 머리로 가르치지 말고 가슴으로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황경원 교사도 “스승의 날은 내가 대접받는 날이 아니라 나도 스승을 찾아가는 날”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날 모임은 저녁 무렵 끝이 났다. 황경원 교사가 마지막에 “건강하셔서 저희랑 보길도 꼭 다시 가셔야죠”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를 지켜보던 스승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글=민동기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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