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합법적 신분’이던 재미 한인 1년 동안 이민자 구금시설 갇혀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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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에서 33년간 살아온 합법적 영주권자인 한인 여성 영선 하빌(52)씨가 이민자 구금시설에 갇혀 추방 위기에 몰린 채 병마와 싸우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

신문은 ‘무분별한 구금, 한 이민자의 수난’이란 제하로 영선씨의 비극을 1면 톱기사로 전하는 등 총 4개 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이 영선씨를 불분명한 사유로 추방대상으로 분류한 뒤 구금시설에서 1년 넘게 비인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이는 현재 미국 내 구금시설에 갇혀 있는 이민자 3만3000여 명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1975년 19세에 주한 미군과 결혼한 뒤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해 영주권자가 된 영선씨는 남편이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곧 이혼했다. 재혼한 남편에게도 구타당하다 헤어진 그는 9년 전 세 번째 남편인 레온 하빌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2006년 자동차에서 마리화나가 적발돼 마약 소지 혐의로 구속된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13개월간 복역한 뒤 지난해 3월 풀려날 예정이던 그는 형기 만료 직전 ‘집에 갈 수 없다’는 통보를 듣게 된다. 10여 년 전 장물 귀금속을 구입해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발견돼 추방 대상자로 분류됐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영선씨는 장물인 줄 모르고 귀금속을 샀다고 주장, 선고유예 및 보호관찰 판결을 받았고 이후 성실한 생활태도로 조기에 관찰기간을 마쳤었다.

그런데도 이민당국은 범죄 전력이 있으면 영주권자라도 추방할 수 있다고 최초로 규정한 96년 법률을 근거로 들어 영선씨를 한국으로 추방키로 결정했다. 신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 법을 공세적으로 적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3월 22일 플로리다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친 영선씨는 죄수복 차림으로 애리조나주의 구금시설로 이송됐다.

20세 때 암을 앓은 전력이 있는 영선씨는 수형생활 중 왼쪽 다리에 종양이 3인치 크기로 재발한 데다 조울증 증세까지 겹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그러나 치료는커녕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금 시설 측은 “영선씨는 법에 따른 의료지원을 적절히 받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또 남편 등 가족과의 면회조차 금지했다. 신문은 영선씨가 일주일에 5장씩 지급되는 종이에 날마다 쓴 옥중일기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1일자 일기에서 영선씨는 “변기에서 일어서니 피가 잔뜩 고여 있어 도움을 청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절규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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