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보송한 피부 … 은은한 윤기 … 그녀는 ‘백자 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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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백자의 윤기를 닮아 ‘윤광’으로 불리는 화장법이 유행이다. 번들거리는 느낌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고급스럽게 반짝여 세련돼 보인다. [사진=김태성 기자]

‘새 빛’이 떴다. 빛이라고 해서 다 같은 빛이 아니다. 요즘 뜬 새 빛은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 반짝인다. 또 은근하다. 뽀얀 백자의 은은한 광택을 닮았다. 매끄러워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주변을 둘러 보라. 봄빛 머금은 여인의 얼굴에도, 하늘하늘한 원피스에도 살짝 살짝 새 빛이 스친다. 뷰티나 패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LCD TV도 마찬가지다. 대체 이 빛은 뭘까.

글=강승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윤나는 얼굴

프라다의 올 가을·겨울 패션쇼. 원피스 겉감이 살짝 비치면서 부드럽게 빛이 난다.

‘새 빛’은 봄처녀의 얼굴에서 가장 빛난다. 최근 몇년간 메이크업은 ‘생얼’에서 ‘동안’, 그리고 ‘물광’으로 진화했다. 색조 화장보다는 화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눈속임’ 화장법이 인기를 끌면서다.

처음엔 색조 화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파운데이션이나 팩트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피부 상태를 드러내면서 ‘생얼’을 강조했다. 잡티를 감추고 기름기를 가려주는 정도로 살짝 화장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비비 크림’이라는 흉터·잡티 제거 전용 제품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 받으며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게 하는 ‘동안’ 화장법이 뒤를 이었다. 아무래도 주름이나 기미를 가리면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론 여기에 번쩍거림을 더해 건강해 보이도록 하는 ‘물광’ 화장법이 대세를 이뤘다. 최근 몇년 패션에서 화두가 된 ‘퓨처리즘’과도 맥이 닿은 물광 화장법은 중년 여성 사이에서 잠깐 인기몰이를 했지만 과도하게 번쩍이는 피부가 역효과를 부르며 인기가 점차 사그라졌다.

여기에 올해 들어 등장한 새 빛은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한 질감에 은근히 감도는 빛이 특징이다. 라네즈에선 ‘윤광’으로, 랑콤에선 ‘빛광’으로 이름 지었다.

물광과 다른 점은 반짝임의 정도다. 번들거리는 물광 화장에서 번쩍임을 한두 단계 낮췄다. 아모레퍼시픽 박수경(소비자미용연구소장)상무는 “백자의 윤기처럼 고급스러운 표현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라네즈의 윤광 화장용 파우더인 ‘슬라이딩 팩트’의 경우 도자기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입자를 더 작게 만들어 번쩍임은 줄이고 더 미세하게 반짝이는 효과를 주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박 상무는 “화장뿐만 아니라 패션·IT 등에서도 디자인의 화두는 더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바뀌었다”며 “그냥 번쩍이는 것은 화려하지만 값싸 보이는 면도 있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소비자들이 빛의 정도, 고급스러움의 감도도 고려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빛 날 듯 말 듯

삼성전자의 신제품 LCD TV ‘보르도’. 베젤 부분을 크리스털 느낌 소재로 만들어 은은한 광택이 난다.

LG전자는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소비자 가전쇼(CES)에 베젤(TV 화면 주변의 사각형 틀)이 숨어 있는 PDP TV ‘보보스’를 선보여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기존 TV의 베젤은 광택을 최대한 살린 플라스틱 느낌의 재질로 돼 있었다.

LG전자가 새롭게 선보인 ‘보보스’의 베젤은 화면과 같은 소재의 ‘글라스 필터’로 만들었다. 아예 이 디자인을 대변하는 단어를 ‘비쳐 보인다’는 뜻의‘쉬어(sheer)’로 삼았다. 이전 디자인보다는 광택이 줄었지만 훨씬 깔끔하고 우아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PDP TV의 베젤 부분을 크리스털 느낌의 소재로 바꿔 은은한 빛을 강조하고 있다. 고급스러움을 앞세우는 전략이다. MP3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여서 애플의 아이팟은 산화피막 알루미늄으로 반짝임보다는 매끈한 윤기가 특징이다. 싸이언의 ‘아이스크림폰’도 살짝 감도는 빛의 디자인이다. 연한 분홍색, 민트 빛깔 등의 파스텔색 휴대전화는 과한 번쩍임보다는 도자기처럼 매끈한 윤이 난다. IT 제품 디자인이 패션 디자인의 유행 경향과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요즘 패션 쪽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올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발표된 프라다의 올 가을·겨울 여성복 패션쇼에선 은은한 빛을 강조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인한 연한 금빛 드레스는 시폰이나 오르간자 같은 소재를 썼다. 실크처럼 빛이 많이 나진 않지만 고상한 분위기의 은근한 광택이 흐른다. 얇고 투명하면서도 가벼운 특징의 이런 소재들은 옷에 반사되는 빛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정도로 윤기가 자연스럽다.

국내 패션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단순한 디자인의 의류나 겹쳐 입기 좋은 단품에 이르기까지 은근한 빛이 나는 게 유행 중이다. 얇은 소재가 비쳐 보이면서도 조금씩 빛이 난다. 여성복 ‘시스템’의 백세훈 대리는 “고급스럽게 보이면서도 스타일의 변화를 주기 좋아서 더 인기”라고 말했다.

◇촬영 협조=아모레퍼시픽(라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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