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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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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57년 10월,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는 기고만장해서 익살을 떨었다. “(스푸트니크가 지구를 벗어났으므로) 이제 지구가 전보다 더 가벼워졌다(Now, the earth became lighter than before).” 외신을 받은 한국의 통신사는 이를 번역해 각 신문사에 송고했다. “별(인공위성)이 떴으므로 이제 지구는 전보다 더 밝아졌다.” 이 경우 ‘light’는 빛이 아니라 ‘가벼움’이란 뜻으로 보아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통신사의 특성이 빚어낸 실수다.

오역은 어디에나 있다. 요한 계시록이 ‘여기에는 하나도 보태고 뺄 것이 없으며, 그런 자는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성경도 예외가 아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구절을 보자. 아람어 원어는 ‘밧줄(gamta)’이었는데 번역자가 이를 ‘낙타(gamla)’로 혼동해 옮긴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행인 것은 이 오역이 원문의 뜻을 훼손하기는커녕 더 뛰어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오역은 같은 나라 말을 해석할 때도 생길 수 있다. 그 비극적인 예가 45년 7월 일본 총리 스즈키 간타로의 기자회견이다. 당시 일본은 연합국에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공식적인 발표는 연합국 측이 공식 채널을 통해 최후통첩을 할 때까지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 항복 조건을 협상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즈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에 대해 “일본 내각은 모쿠사츠(默殺·묵살)의 입장을 견지한다”고 모호하게 답변한 것이다. 취지는 ‘답변을 당분간 보류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쿠사츠’란 표현은 ‘무시한다(ignore)’와 ‘언급을 삼간다(no comment)’의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 언론과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은 이를 전자, 즉 포츠담 선언의 거부로 보도해 버렸다. 그로부터 사흘 만에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원폭 투하는 이 같은 오해와 오역이 없었으면 생기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에서는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의 오역이 분란을 부르고 있다. 미국 측 연방 관보의 내용은 애초의 입법예고보다 완화된 내용인데 이를 한국 측이 ‘강화 조치’로 오역한 게 문제다. 이 때문에 국내 여론은 폭탄맞은 것처럼 들끓고 있다. 딱한 노릇이다. 정부는 영어 몰입교육을 외치기 전에 협상팀에 영어 전문가를 좀 더 많이 포진시켜야 했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