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食堂주인이 누군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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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통령후보를 뽑는 정당의 경선은 그 정당엔 물론 국민에게도 하나의 큰 축제일 수 있다.국민의 직접 선택에 앞서 정당이 국민앞에 내세울 후보를 1차로 걸러내는 이 경선은 정당민주주의의커다란 상징이요,정당이 국민과 가장 가깝게 가는 행사다.
평소엔 보스와 몇몇 간부의 밀실정치가 이 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하지만 경선마당에서는 보스나 지방대의원이나 다같이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과거 야당의 대통령후보경선에서 펼쳐진 명승부가 야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불러일으켜 이나라 민주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후보경선의 의의는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시대에도 있었던 경선이 민주화시대에 와서오히려 퇴색하고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자.지금 새정치국민회의나 자민련에서 과연 경선다운 경선이 이뤄질수 있을까.DJ나 JP에 맞서 표대결을 벌일 인물들이 있는가.
DJ는 그동안 지역당과 사당성(私黨性)을 극복하기 위해 천하의 영웅 호걸들을 대거 영입했다지만 그의 맞수가 될만하거나 맞수를 꿈꿀만한 인물이 한사람이라도 있는 것 같지 않다.모조리 자기만 못한 사람,자기말을 들을 사람만 영입한게 아닌가.
JP의 자민련 역시 마찬가지다.얼마전 JP가 와병(臥病)으로보름정도 당사에 나오지 않자 자민련은 마치 「초상집」처럼 됐다고 신문에 보도되었다.그러다가 JP가 출근하니까 당에 활기가 넘치더라는 것이다.자민련은 그저 JP 1人이 희 망이요 태양인것이다. 이렇게 볼때 앞으로 큰 변화가 없는한 국민회의나 자민련에서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후보경선은 꿈도 못꾸고 경선아닌 DJ.JP후보추대 이벤트나 있게될 것이다.
임기가 끝나면 물러갈 YS를 빼곤 부각된 스타가 별로 없는 민자당에서는 그래도 경선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YS의 최근 발언을 보면 민자당에서도 경선이 있을지 없을지 아리송한 느낌이다.
놀랄만한 세대교체로 젊은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YS 발언은 자기의중(意中)대로 후보를 결정해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들린다.당중진들의 대선(大選)논의를 금지해 놓고 「놀랄만한 젊은 후보」를 내세우겠다고 했으니 지금 민자당의 사정으로 보아 누구도 총재가 밀어붙이면 저항하기가 어려울 것 이다.그렇다면 결과적으로민자당에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짜릿한 경선은 없는 채 형식적 전당대회로 후보가 결정될 공산이 다분하다.
결국 3김씨의 3당 가운데 어느 당에도 진정한 경선은 기대하기 어려운게 아닌가.이런 현상이 민주화의 진전인가,퇴보인가.정치발전인가,후퇴인가.
DJ는 가끔 YS와의 오랜 동지였던 관계를 언급하면서 『농담으로라도 다음에는 당신이 한번 해보라고 할만도 한데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다』고 서운해했다.일종의 재담(才談)이겠지만 대통령 자리를 친구 또는 동지끼리 주고 받을 수도 있 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국민회의 박지원(朴智元)대변인은 여당의 세대교체론에 대해 『자기는 식사를 했다고 식당문을 닫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역시 재담으로 여당을 공격한 말이겠지만,대통령직을 마치 밥먹는 것처럼 너도 먹었으니 나도 먹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같은 말이다.
국민이 선택하는 대통령을 정치인들 자기끼리 주느니 마느니,식당문을 닫느니 마느니 하고 있는 것이다.
YS의 「놀랄만한 젊은 후보」론도 후보가 마치 자기 장중(掌中)에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사전에 당간부와의 협의나 민자당의어떤 회의를 거쳐 나온 말이 아니라고 한다.당원 전체의 뜻이 결집돼 나와야 할 후보를 당총재가 미리 일방적으 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민주주의를 열심히 외치면서도 실은 1人주의로 가고 있는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인 셈이다.
누구는 아직 2년이나 남았다 하고 누구는 이제 2년밖에 안남았다고 하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지도자들의 행태가 상궤(常軌)를 자꾸 벗어나고 있다.결국 대통령을 뽑을 사람은 국민인데 국민은 아랑곳 없이 자기네끼리 「식당문」을 열 고 닫는 문제로,늙은이 젊은이 문제로 대결의식만 높여가고 있다.도대체 식당주인이 누구인데 마음대로 문을 닫고 열 수 있는가.지도자들부터 국민과 당원을 향해 정치하는 민주적 사고방식을 갖는게 중요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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