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시민의 힘과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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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송파구와 경기도시흥시.군포시등의 쓰레기 대란(大亂)을 보면서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민의 힘이 참 커졌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요즘 고유명사처럼 친숙하게 들리는 「쓰레기 대란」이야말로 잘새겨보면 막강한 시민권력이 창출해낸 대표적인 업적(?)이다.이대란은 지난 여름 소각장 건설을 백지화시킨 군포시민들에 대해 수도권매립지 주민대책위가 군포쓰레기를 받지 않 는다는 조치를 취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매립지라는 공공시설에 대한 이 민간인들의 장악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분리수거를 잘못했거나 산업폐기물을 쓰레기에 섞었다가이들에게 걸리면 어느 자치단체도 꼼짝없이 모든 주민이 대문밖에쓰레기를 쌓아놓고 그 냄새를 견디는 벌을 받아 야 한다.
현재 건설중인 모구(區)쓰레기소각장은 원래 인근 자치구 쓰레기까지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크게 지어지고 있다.그러나 이 구는 다른동네 쓰레기가 우리동네로 오는 것을 주민들이 싫어한다며 옆 자치구 쓰레기 받기를 기피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난 김에 사소한 것까지 들춰보자면 민선 구청장들마다앞다퉈 시행하고 있는 주차단속 예고제도 그렇다.법적으로 주차가금지된 구역에 5분내지 7분은 세워도 좋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법은 법이로되 법이 아닌」모순이 일 부 시민들의불만을 해소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합리화된다.
시민의 힘이 강대해졌다는 것은 바로 우리사회 민주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힘이라는 것이 예를들어 자기가 차를 타고가면소통에 방해되는 불법주차를 단속하지 않는 공무원이 한심스럽고,불법주차를 하면 단속하는 공무원이 야속한 식의 변덕스러운 논리를 저변에 깔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다.
시민의 힘이 강해질수록 시민들은 현명해져야 한다.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재미없는 것이라고 외면해버려선 안된다.그러다가는 모처럼 찾은 시민의 자유를 「쓰레기」와 함께 시민들 스스로 내다버리고 싶어하게 될지도 모 른다.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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