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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독일인 스승·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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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베르너 사세 교수<右>와 빈도림씨가 설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일부러 한국적 정서를 담으려고 한 건 아닌데, 한국화처럼 보이는 모양이지?”

“괜찮아 보입니까?”

12일 전남 담양군 창평면 ‘달뫼미술관’. 개량한복 차림의 두 서양인이 유창한 한국말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손님들을 맞았다.

주인공은 베르너 사세(67)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와 그의 제자인 빈도림(55·본명 디르크 퓐들링)씨. 독일 보쿰대 한국학 사제지간인 둘은 한국의 매력에 빠져 전남 담양군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골마을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에서 10일 2인전을 시작으로 25일까지 계속한다.

주제인 ‘화’에 대해 물었더니, 사세 교수는 해박한 한학 지식을 바탕으로 동양철학적인 답변을 했다.

“그림 화(畵), 이야기 화(話), 될 화(化), 빛날 화(華), 불 화(火), 화합할 화(和), 재화 화(禍), 단풍나무 화(<691B>), 화할 화(<9FA2>), 시끄러울 화(譁)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죠.”

사세 교수는 전시회에 수묵·수묵담채 그림 20점을 걸었다. 그는 “남들이 그린 것들을 보고 시도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장인이 전남 나주 ‘호남비료’에서 근무하던 1966~70년 나주·여수·익산에서 기술학교 강사로 일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귀국 뒤 보쿰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해 75년 논문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 방언’으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교수가 돼 한국학과를 개설했다. 그 전까지는 일본학과에서 한국학을 다뤘다. 92년에는 함부르크대로 옮겨 한국학과를 열었으며, 유럽한국학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6년 9월 은퇴 뒤 제자인 빈씨가 사는 곳에서 6km 떨어진 담양군 창평면에 정착했다. 한국 고전문학 등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지낸다. 그는 “내 한자 이름은 思世, 세상을 생각한다는 뜻”이라며 “한옥에 살아보니 아주 좋은데도 한국 사람들은 불편하다며 미국식으로 살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빈씨는 원불교 색채가 강한 ‘일원상(一圓相)’이란 작품을 내놨다. 알고 봤더니 부인 이영희(50)씨와 4년간 함께 작업한 끝에 원불교 교전을 독일어로 옮긴 주인공이었다. 빈씨는 “교전을 번역하면서 원불교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부인은 독문학을 전공하고 책 40여 권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다.

빈씨는 보쿰대에서 사세 교수 아래서 한국학을 공부했고, 서울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다가 눌러앉았다. 2005년 한국으로 귀화해 빈도림(賓道林)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주한 독일대사관 통역관과 효성여대 교수를 지내다 2002년 부인과 함께 담양군 대덕면 옥천골로 옮겨 밀랍으로 초를 만드는 ‘빈도림 꿀초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빈씨는 이번 전시회에 밀랍 초와 철조망·멍석·돌들을 이용해 분단과 통일을 표현한 ‘희망’을 비롯해 설치미술품 6점을 출품했다. 빈씨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담양에서 전시회를 열어 이웃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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