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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1만리>6.제1부 중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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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그마치 여섯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쳐대야 제소리가 난다.이 악기를 두드리는데 사용하는 통나무 종봉(鐘捧)은 연주자들의 키만하다.중국 권력문화의 상징인 「호북 편종(湖北 編鐘)」이라는 타악기는 이렇게 연주된다.
1978년 양자강 중류 무한(武漢)市 부근에서 발굴된 2,400년전 楚나라 악기다.크고 작은 청동 종 65개가 전체 길이12,최고 높이 2.7의 3층 나무걸개에 주렁주렁 걸려 있다.
이들 편종중 가장 큰 종인 용종(甬鐘)의 높이는 중학생 키만하고(152.3㎝) 무게가 203.6㎏.종들을 주조하는데 들어간청동의 총량은 2.5이다.
편종 발굴 참여자이자 취재팀의 일원인 오 교(吳 釗.중국 예술원)교수는 『이 편종의 거대성(巨大性)은 진시황릉.만리장성과함께 중앙집중의 권력문화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호북성(湖北省) 수도 무한의 주변 들판은 지평선 끝까지 여름수확을 기다리는 누런 볏줄기들이 찰랑거린다(양자강 유역은 쌀 2모작지대라 여름에 첫번째 벼걷이를 한다).물산 풍부한 대평원의 이 도시는 2천수백년전 천하 권력을 놓고 춘추 전국시대의 각 나라들이 각축했던 대권중심지였다.
무한 박물관에서 동서고금의 최대.최고(最古)타악기인 호북 편종을 처음 보았을 때 취재팀은 단지 희귀한 옛날 악기를 접한게아니라 양자강 중류에서 형성된 중국 고대국가의 권력미학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호북 편종은 증후을묘(曾侯乙墓)에서 발굴된 1만5,000개 출토품중 하나다.증후을묘란 曾나라 제후인 乙의 묘라는 뜻. 무한시 서북쪽 160㎞ 떨어진 수주(隨州)에서 발견한 이 묘엔 45세쯤으로 보이는 제후 乙의 미라와 그를 시중들게 하기위해 생매장한 13세에서 25세정도의 13명 여자 노예 棺등이고스란히 발견됐다.2차대전 이후 「세계 고고학사 10대 기적」중 하나로 손꼽힌다.거대 편종이 11 땅속에서 단 한치도 부식되지 않고 오늘의 햇살을 받으며 새로 태어났을 때 「지하의 대형 오케스트라」「2,400년전 楚나라 문화의 재현」이라는 찬탄을 한몸에 받았다.
편종은 거대하지만 그 소리는 섬세하면서 깊다.65개의 종은 모두 제 고유의 음을 낸다.한 연주자가 종봉을 들고 아가리가 넓은 1층에 걸린 큰 종들을 퉁-퉁-치면 다른 연주자들은 양손에 든 망치모양의 채로 2층이나 3층에 걸린 중소 (中小) 종들을 껑-껑- 쳐댄다.전체적으로 다소 저음이지만 맑기가 산사(山寺)의 계곡 물소리같고 울림의 여운은 2~3개 새로운 음이 타종된 후에도 계속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길다.놀라운 것은 하나의 종에서 2개의 음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한 주조기술이다.
종마다 정중앙을 두드릴 때와 옆면을 두드릴 때 정확히 3음정 차이의 음이 울리도록 돼 있다.65개의 종마다 2개의 음이 나올 수 있으니 실제로 130개의 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진품 편종은 박물관 2층 유리관속에 보전하고 있는데 1층에서는 박물관 소속 공연단이 같은 크기의 모조품 편종으로 관람객을위한 연주를 한다.
취재팀이 감상한 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중 4악장과『초상(楚商)』등 옛 중국음악 7곡.베토벤 『합창』의 장엄함은중국 고대악기의 섬세한 저음(低音)을 통해 동양적 명상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박물관장 서지매(舒之梅)씨는 『고대뿐 아니라 현대음악,중국과외국의 어떤 노래든 이 편종으로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호북 편종은 전국시대인 기원전 433년에 楚혜왕이 자기아버지 소왕(昭王)의 은인인 乙의 장례식에 바친 것이다.
호북 편종 공연단의 해외공연은 항상 모조품으로 연주하는데 모조품인데도 보험료만 3만달러를 받는다.
▧ 다음회는 「영웅문학의 현대적 탄생-毛澤東의 사랑과 혁명」편입니다.
초(楚)나라 혜왕(惠王)이 즉위 56년에 증(曾)나라의 제후을(乙)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박종(박鐘)을 제작해 서양(西陽)에 보내 존경하는 을의 명복을 빌다.
-BC 433년,楚王 박鐘에 새겨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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