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객관보도 정평 美언론 철저한 반성도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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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72년 워싱턴 포스트는 공화당의 하수인 5명이 민주당 당사에 몰래 들어가 도청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는 핵폭풍이 몰아쳤고, 닉슨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98년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직원이던 르윈스키와 집무실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나중에 '지퍼게이트'로 불린 이 스캔들로 클린턴은 중대한 위기를 맞았으나 자기 반성을 통해 가까스로 모면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이 가장 크게 문제삼은 것은 섹스 스캔들이나 도청보다는 최고지도자의 '거짓말'이었다.

언론이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치명적인 '신뢰의 위기'와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된다. 지난해 5월 뉴욕 타임스는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기사 표절.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자체 조사에 나섰다. 많은 기사가 조작.표절된 것으로 드러났고, 편집인과 편집국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발행인은 독자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는 이를 교훈 삼아 전국 350여 편집인들에게 기사확인 시스템을 가동시킬 것을 호소했다. 많은 신문사가 편집인 명의의 기사로 신문제작 방향을 발표했고, 독자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일부 신문은 '정확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사 특별팀이 기사에 인용된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해 진위를 조사하기도 했다. 물론 의심이 가는 일부 기사에 한해서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기사 조작을 막기 위해 '익명보도 원칙'을 발표했다. 이 신문사는 80년 재닛 쿠크라는 여기자가 마약중독 소년의 이야기를 꾸며낸 '지미의 세계'보도로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다우니 편집인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신문제작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기사를 직접 썼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시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특파원인 켈리가 많은 기사를 조작.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신문 역시 독자들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국의 언론학자 자노위츠는 미국 저널리즘의 보도 행태를 두 가지 모델로 분석했다. 수문장(gatekeeper) 모델과 대변인(advocate) 모델이 그것이다. 앞 모델에선 기사의 정확성과 객관성이 금과옥조다. 반면 뒤 모델에선 특정 정파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옳다.

최근 미국저널리즘협회는 '2004년 뉴스미디어 연차보고서'에서 "사실 확인보다는 주장과 논평이 듬뿍 들어간 기사를 좋아하는 게 오늘날 미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에 논평이 들어가야 힘이 있다고 기자가 믿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전은 저널리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자들은 마감시간에 더 쫓기고, 극심한 특종 경쟁 속에서 기사를 베끼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질 수도 있다. 또 제작 간부들은 인터넷을 통해 기사의 정확성을 쉽게 확인할 수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점검 시스템을 갖추고, 철저하게 자기 점검을 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언론의 경쟁력이다. 실수를 교훈 삼아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기사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저널리즘은 어떠한가. 아직 대변인 저널리즘 혹은 당파.정파 저널리즘에 빠져 네 편, 내 편 편가르기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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