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61> 베로나의 명품 베르타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호 35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로나 지방은 ‘아마로네’라는 와인으로 유명하다.

베로나는 관광지로는 베네치아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와인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매년 4월에 열리는 이탈리아의 최대 와인 전시회 ‘비니탈리(Vinitaly)’의 개최지로 유명하다. 도시 중심에 솟아 있는 핑크색 대리석으로 지은 아레나(원형 경기장)는 밤이면 환한 조명에 감싸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 안전하고 아담한 도시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어느 한 곳도 예외 없이 다양한 생산자가 만든 아마로네를 진열해 놓고 있다. 아마로네는 베로나 사람들의 자랑이며 그 뛰어난 품질과 높은 평가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1> 베르타니 올드 빈티지. 와인 애호가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2> 베르타니를 만드는 당도 높은 포도를 자연풍에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모습.

아마로네 와인을 만든 개척자인 베르타니사(社)는 베르타니 형제가 만든 와이너리로 그 역사는 의외로 짧다. 1900년대 초기만 해도 이 지역에서는 흑포도로 만든 단맛 스파클링 와인이 상류계층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일반 와인으로는 물처럼 경쾌한 와인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르타니는 ‘본격적인 와인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아마로네다.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 1957년 시제품을 만들었고 다음해 정규 상품을 발매할 수 있었다.

아마로네의 제조방법은 독특하기 짝이 없다. 포도가 푹 익기를 기다렸다가 느지막이 수확해 당도를 높인다. 수확한 포도는 다락방으로 옮겨 바닥에 잘 널어놓고 자연 바람만으로 말린 뒤 압착해 와인으로 만든다. 알코올 발효란 효모에 의해 당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되는 것을 말한다. 포도를 늦게 따서 건조·숙성시키면 당도가 훨씬 높아진다. 이 독특한 방법 덕분에 진한 포도 맛에 알코올 농도가 높은 풀보디 와인이 완성된다.

베르타니는 60년대에 만든 아마로네를 비축해 두고 있다. 필자는 백화점에서 와인 바이어로 일할 때 올드 빈티지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차례 베르타니를 방문했다. 직업상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오래된 빈티지를 시음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런 와인들은 큰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비슷한 확률로 절정기가 한참 지나거나 품질에 문제가 있는 와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베르타니는 다르다. 예를 들어 필자가 태어난 해인 65년은 이탈리아 와인 사상 불모의 빈티지다. 하지만 베르타니는 싱싱하고 과일 맛이 넘쳐 정말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근사하다. 60년·70년·71년·73년·75년·76년산도 가격 이상의 감동을 안겨 준다.

3년 전 베르타니를 방문했을 때 와이너리에서 한 차례 시음을 했는데도 저녁 때가 되자 또 아마로네 생각이 났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이 지방의 명물요리 보리트 미스트(다양한 고기를 찐 음식)를 주문하고 “최고 빈티지의 아마로네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소믈리에가 97년산을 내왔다. 완벽했다.

브랜디처럼 깊이 있는 아로마, 아마레토같이 달콤하고 쌉싸래한 맛, 로스트 아몬드와 여운으로 남는 비터 초콜릿, 질 좋은 시가를 피웠을 때처럼 입천장에 퍼지는 진한 맛, 감동이 밀려들었다. 오래 친분을 쌓아온 친구처럼 이 와인과도 긴 시간을 함께하게 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