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몸값 급등의 허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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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30면

여의도 증권가가 들썩이고 있다. 애널리스트(증권분석가) 연봉이 급등하고 있는 탓이다. 팀장급 연봉이 3억~4억원에 이르고, 리서치센터장은 7억~8억원이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실제로 최근 한 신생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긴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연봉이 “8억원을 조금 넘는다”고 귀띔했다.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는 쪽은 실력이 있건 없건 몇 년의 경력만 있으면 기존 연봉에다 1억원 정도는 더 줘야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을 개탄한다. “주가 전망이 어긋나기 일쑤인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그렇게 높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하소연한다. “현재 몸값에 거품이 잔뜩 낀 만큼 2~3년 안에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몸값이 치솟는 것은 한국 증권업계의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국내 증권사들은 그동안 증시가 안 좋으면 인력을 내보내고, 주가가 올라 돈벌이에 도움이 되면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기를 반복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애널스리트나 투자은행(IB) 전문가 등을 사내에서 착실히 키워나가는 투자에는 소홀했다.

외국의 증권사들은 어떤가.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메릴린치 등은 스스로 인재를 길러 세계 정상급 투자은행이 됐다. 세 회사 모두 1950년대부터 애널리스트의 중요성을 깨닫고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의 실적과 리스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들 회사의 인재 풀은 막강해졌다. 인터넷 거품 시기인 90년대 후반 적잖은 애널리스트들이 빠져나갔지만 리서치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숙성된 팀워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진정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곶감 빼먹기식 스카우트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인재를 스스로 길러내는 전략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냉·온탕식 인력 확보 관행으로는 국제시장에서 통할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제대로 사람을 키울 의지가 없다면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에 따른 투자은행·자산운용업 육성도 이벤트성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 모래성같이 사라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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