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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모두를 위한 하나" 러셀 하딘 지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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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냉전체제가 해체됐다.그 뒤에 나타난 세계적 현상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두라 할 수 있다.과거 냉전체제의 헤게모니 속에서 잠재돼 있었던 민족주의가 각 민족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끝나지 않고 타 민족.타종족에 대한 인종적.종교적 학살로 이어지고 있다.
보스니아 지역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계 사이의 살육전,아프리카 지역의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종족살상,르완다 내전,北아일랜드 지역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테러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인종.종교적 집단테러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원시적 감정에 의한 것으로 설명돼왔다.과거 민족사적 갈등으로부터 유래한 민족감정이나 어떤 신비한 종교적 카리스마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그것이다.이런 설명은 일종의 숙명론적 해석으로,각 민족의 공동체성에 입각할 때만 가능한 집단적 행위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이 설명이 과연 증폭되고 있는 인종.종교적 폭력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뉴욕大 정치학과 교수이자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인 러셀 하딘이 최근 펴낸 『모두를 위한 하나』(원제 One for All, Princeton University Press刊)도 비합리적 원시감정으로 인종.종교적 집단폭 력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책이다.하딘 교수는 이 책에서 인종.집단적 공동체성을 가정하는 공동체론자의 논리가 낳을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면서 개인의 선택과 이해관계로부터 집단폭력을 설명하고자 한다. 하딘 교수는 「통합」을 「정체성」으로부터 분리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정체성」이 어느정도 객관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통합」은 주관적 개념으로 각 개인의 작용-반작용속에서 내적 「정체성」이 어떻게 확보되는가를 설명하는 행위 개념이라는 것.
개인의 이해관계와 사회통합에서의 집단간 폭력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하딘교수는 최근 영.미 사회이론에서 각광받고 있는 「합리적 선택이론」을 채택하고 있다.「합리적 선택이론」이란 사회.정치적 현상을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공동체론자들 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최적(最適)의 결과로 파악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하딘교수는 「합리적 선택이론」이 매우 잘못된 두가지 전제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하나는 이 이론은 모든 사람이 순간 순간마다 자신의 이해만을 위해,그것도 「합리적」「계산적」으로 한다는 전제에서만 성립된다는 것이다.그러나 하 딘교수는 인간의 행위선택이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그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도 각 민족의 문화.역사적 전통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또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전제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딘교수는 인종.종교적 살상행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나름의 합리성에 기초를 둔 행위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일어났을 때 백인 트럭운전기사레지널드 데니의 머리를 벽돌로 쳐죽인 데미엄 윌리엄을 그 예로든다.윌리엄 자신도 동일한 인종주의적 폭력으로 구속되자 『나는기꺼운 마음으로 체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몇년간의 감옥생활을 거치면서 그가 비관에 빠진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비도덕적인 종교.인종적 분규와 같은 집단적 행위로 전환될 수 있는가.하딘 교수는 그것을 정치지도자가 개인의 선택을 동력화해 「사회적 통합」을 체계화하려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없는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절도.상해.살인,그외의 해를 가하는 행위와 같은 나쁜 행위에 대해 무정부적 복수체제가 유익할 수 있다.그런 체제는 뿌리 깊은 반목의복수체계로 발전하게 되는 경향을 지닌다….따라서 각 집단은 다른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구성원을 동력화해 폭력을 제도화한다.이런 방식으로 보편적 규준은 왜곡되고,폭력은 더욱 강화된다.』 최근 영.미 정치철학에서의 핵심적 쟁점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개인의 선택에서 사회전체의 규정성을 부각하는 공동체론 사이의 논쟁이다. 이 책의 저자 하딘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신자유주의 옹호자다.그는 민족주의자와 같은 공동체주의자가 「개인에 대한 사회적 규정성」이라는 인식론적 판단이 인간행위에서 사회가우선이라는 규범을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 민족주의와 인종적 동력화가 오늘날 해방과 진보보다 파괴와 파멸을 낳고 있는데,그럼에도 그것이 전세계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족.인종적동력화보다는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을 촉진하는 사회제도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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